최근 로봇 분야 화두는 단연 휴머노이드다. 인간과 교감하는 인공지능(AI) 기술을 결합한 휴머노이드가 경쟁적으로 발표되고 있다. AI 기술력 1·2위를 다투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로봇 기업이 가장 눈에 띈다. 미국 스타트업 피규어의 휴머노이드와 중국 유니트리 G1 모델 등의 공통적인 배경은 AI를 활용한 학습 방법으로 그간 개발에 어려움이 많았던 로봇 동작 성능을 빠르게 끌어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따로 있다. 잘생긴 로봇 제품 출시가 초점이 아니라 로봇 제어, 로봇 서비스에 필요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차곡차곡 쌓고 있다는 점이다. 스탠퍼드대와 구글이 진행 중인 알로하 프로젝트는 가사 등 일상 생활에 필요한 로봇 단말기를 저렴하게 공급하는 대신 여기서 축적되는 동작 데이터를 구글이 모을 것으로 예상된다. 취합된 데이터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드는 비즈니스로 파생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2500여개 이상의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데이터 거래소가 있으며 데이터를 수집해 제3자에게 판매하거나 가공·분석해 부가가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공공 데이터, 정보 웹 크롤링 기술 등을 이용해 수집하거나, 온라인 플랫폼 등으로부터 정보 트래킹 획득, 데이터 웨어하우스 구축을 통한 데이터 분석 및 예측 모델 등을 거래하고 있다. 중국은 44개의 데이터 거래소를 설립했는데, 2021년 준공공기관 지위로 설립된 상하이 데이터거래소가 기업 데이터를 가상자산화해 발행하고 거래까지 성공했다. 주요 데이터 거래소에 등록된 상품 수량만 벌써 1만3000개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고, 2025년까지 중국 내 거래량이 100억위안(약1조8283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KDX한국데이터거래소가 국내외 10만개의 민간·공공 데이터를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사례를 들여다 보면 공통적으로 로봇 데이터를 빅데이터로 만들고, 이를 다시 가상 제품화할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당장의 현실에서 휴머노이드를 경제적 부가가치를 만드는 생산 도구로 보기에 무리가 있다. 그러나 미래에 벌어질 새로운 삶의 방식과 데이터 경제 프레임으로 본다면 의미와 가치는 달라진다.
로봇 산업은 아직 전 세계적으로 개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초기 시장이다. 활용성을 검증하고 있는 분야가 스마트팩토리로 대변되는 자율제조 분야와 스마트시티와 같은 공공 서비스 부문이다. 더 나아가 만개하는 시장은 일상생활 서비스인데, 가사노동과 연관된 영역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변화하는 환경을 고려할 때, 가격 경쟁력을 갖춘 좋은 로봇 제품 양산이라는 하드웨어적 관점에서 벗어나 실제 로봇의 의미와 가치를 결정하는 데이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초기 시장 생태계인 만큼 시장 실패가 큰 가상화 영역에서 공공 부문의 인프라 투자, 즉, 디지털 생태계 플랫폼 조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
디지털플랫폼 기반 기술인 BAND(블록체인·인공지능·네트워크·데이터)와 물리적 수행력을 갖춘 로봇의 융합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 정책에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로봇 산업은 초기 시장이므로 디지털 기반 생태계로 조성하는 데 수월하다. 자율 제조의 로봇 데이터, 공공 서비스의 실증 로봇 데이터, 상업 서비스의 실증 로봇 데이터를 정부가 투자해 조성된 로봇 분야 엣지 클라우드에 축적하고 로봇 엣지 클라우드 중심의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생태계를 무역기술장벽(TBT)으로 삼아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방식은 어떨까? 축적된 데이터를 토큰화하고 거래 제도를 만들면 구매한 로봇 데이터를 기준으로 다양한 맞춤형 로봇 제품을 시장에 공급하는 사이버물리시스템(CPS) 방식의 혁신적 시장도 새롭게 조성될 것이다.
멀어 보이지만, 곧 등장할 시장의 모습이라고 예상한다. 미국과 중국의 휴머노이드를 구경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디지털 로봇 생태계에 그들이 올라타고 싶어하는 앞선 전략을 구사할 때다.
전진우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수석 jzinu@kir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