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ESG) 공시 기준 최종안 발표를 앞두고 경제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현재의 공개 초안이 기본 원칙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조업 중심의 한국 산업 특성에도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경제단체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등 개별기업까지도 섣부른 제도 도입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4일 경제계에 따르면 한국회계기준원이 지난달 말까지 실시한 한국지속가능성 공시기준 공개 초안에 대한 의견 수렴에 200개에 가까운 기업과 단체가 의견서를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경제인총협회, 대한상의, 한국상장사협의회 등 경제단체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등 개별기업 차원에서도 공시 초안에 대한 우려를 표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통상 개별 기업들은 경총이나 상장협 등 관련단체를 통해 의견을 전달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개별 기업 단위에서도 각종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기후관련 공시 강화가 국제적 추세인 만큼 큰 흐름은 인정하지만 국내 적용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라고 전했다.
경총과 상장협을 비롯한 경제계는 ESG공시의 국내 도입 시기를 늦추고 공급망의 탄소배출량을 일컫는 스코프3를 공시항목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을 각각 회계기준원에 전달했다. 신뢰성 있는 데이터를 획득·관리하는데 기술적 한계가 있는데다 과도한 사회적 비용을 야기한다는 이유에서다.
공시 의무화 일정에 대해서도 민관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 2028년 회계년도 이후인 2029년부터 적용해야한다는 입장이다. 금융위원회는 국제 회계기준 변화에 따라 ESG공시 국내 기준을 올해까지 확정하되 의무화 시기는 주요국의 일정 등을 고려해 2026년 이후로 연기한다는 방침을 정한 바 있다.
경제계는 이날 공동 세미나를 열어 현재의 공개 초안을 성토했다. 경총, 대한상의, 한국경제인협회, 상장사협의회 공동 주최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는 공개초안에 대한 대폭적인 손질과 정부의 신중한 제도 추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문철우 성균관대 경영대학 교수는 상장회사 및 배출량 검증 전문가의 의견조사 결과를 공개하면서 “공시기준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고 객관적 방법론도 제시하지 못해 기업들은 자체 활용보다 외부 컨설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공급망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일컫는 Scope 3 데이터에 대해서는 검증 전문가들조차 신뢰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았다”면서, “불투명하게 생성된 정보를 투자자나 이해관계자들은 유용하다고 말하는 코미디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패널토론에서는 정부와 관계기관이 보다 긴 호흡으로 지속가능성 공시 관련 제도 정비와 기반 조성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손석호 경총 사회정책팀장은 “EU가 지속가능성 공시를 서두르는 것은 단순한 투자정보 제공 차원을 넘어 역내 이익보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면서 ”국내 공시기준을 마련할 때는 국제 동향을 다양하게 참고하되,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국내 기업 현실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SG 공시 도입을 마냥 미룰 때 만은 아니라는 주장도 투자자와 학계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 정책의 성공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시각이다. 회계기준원은 이르면 다음달 중 ESG 공시 최종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