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 줄 아십니까?”
“냉장고 문을 열고, 코끼리를 넣고, 냉장고 문을 닫으면 됩니다.”
우리나라 국민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농담(弄談)', 즉 말 그대로 웃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진담(眞談)'으로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행태는 미디어를 통해 전 국민에게 중계된다.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 때로는 스스로 분을 참지 못해서 '격노(激怒)'까지 한단다.
이 장면이 TV 개그 프로그램에 나온다면 실소하고 말겠지만, 내 이웃이 병원을 돌아다니다가 끝내 유명을 달리하는 현실은 우리를 분노케 한다. 그런데,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코끼리와 씨름을 하고 있다. 문제는 코끼리에게 있다고 믿으면서. 진정으로 코끼리를 냉장고 넣고 싶었다면, '우리'라면 '그러한' 냉장고를 준비했을 것이다. 모든 농부, 어부 등 필부필부가 그렇게 하듯이 말이다.
불교는 인간의 고통을 소멸시킴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종교다. 어떠한 절대자나 유일신의 지휘를 벗어나 단지 천지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진리(眞理)를 따름으로써 속세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가지게 되는 고통들로부터 벗어나기를 노력한다. 불교에서는 고통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네 가지 고통인 생노병사(生老病死)다. 이는 불가항력적인 것으로, 불가(佛家)에서는 네 가지 고통, 즉 사고(四苦)라고 부르는데, 이러할 수밖에 없음을 지혜롭게 수용하는 자세를 가지고 삶을 영위하도록 한다.
다음은, 사고와는 조금 다른 네 가지 고통이 있어서, 이를 앞의 사고와 더하여 팔고(八苦)라고 부른다. 그 첫째는 원증회고(怨憎會苦)이며, 좋아하지 않는 것들과 만나는 괴로움이다. 다음 애별리고(愛別離苦)는 좋아하는 것들과 헤어지는 괴로움이며, 구부득고(求不得苦)는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괴로움이다.
하나하나 헤아려보면 공감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참으로 딱한 현실이다. 부처님은 어찌 이런 진리를 발견하셨을까? 2024년 오늘에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으려는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마주치는 것, 자기를 좋아했었던 50%가 지금은 20%만 남은 채 나의 모습이 싫어 야속하게 떠나버린 사람들, 마지막으로, 코끼리가 냉장고에 들어가지 않은 채 우뚝 버티고 있는 이런 모든 상황들이 괴로움이다.
사고 팔고의 마지막 괴로움은 오취온고(五取蘊苦)이다. '자신이 오온(五蘊)의 가합(假合)'임을 모르는 채, 오온을 '자기' 자신이라고 집착하고 있는 데서 오는 괴로움이다. 인간의 인식체계를 과학적으로 설파하고 있는 오온, 즉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주관적 절차를 통해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주체성을 함양해 나간다.
그럼으로써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오온은 그의 개인적인 기품(氣稟)을 형성할 뿐임을 알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을 존중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위험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가장 큰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1960년대를 성장해온 우리 세대는 어린 시절에 이런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어린이 만화에 나오는 악당들의 모습이 그러했다. 선량했던 '우리들'은, 빠짐없이 그러한 악당들을 물리치는 정의(正義)로운 주인공에게 환호했었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어언 50세, 60세도 넘어버렸다.
이런 어린 시절을 남들과는 특별하게 구분되도록 살아 온 것 같지도 않은 특정인 두 분께 당부한다. 리더십에 대한 문헌인 인물지(人物志)와 변경(辨經)이라는 책과 더불어 중국 순(舜)임금이 정사(政事)를 살폈던 역사를 뒷 방에서라도 일독해주시라. 기실, 내용은 전혀 특별한 것이 없기에 여기에 소개하기에는 차마 면구스럽다.
그저 당신들이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선량한 국민들이 바라고 있음을 알려주고 싶을 따름이다.
이강우 동국대 AI융합대학장 klee@dongguk.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