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두콩 화분이 레일을 따라 컨테이너 문 앞에 줄을 섰다. 문이 열릴 때마다 화분이 들어가고 나오길 반복했다.
5일 찾은 전라북도 전주시 소재 농촌진흥청 표현체 연구동에서 확인한 디지털 육종의 출발점이었다.
컨테이너는 일종의 식물 촬영관이다. 다양한 농식물의 표현형을 촬영해 발육 상태, 병충해 피해 정도 등 생장 관련 모든 정보를 이미지화한다. 표현형은 유전자와 외부 환경에 의해 결정된 작물의 특성을 말한다.
농진청은 작물의 생육 특성을 영상 장치로 수치화, 정량화해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형과 유전형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하는 표현체 기술을 디지털화했다.
가시광, 초분광 영상센서를 이용해 작물의 종자 특성, 식물의 생육 정보 등 이미지 촬영 및 분석으로 신속하게 분석하는 기술이 부상하면서 2017년 표현체 연구동을 설립했다. 연구동은 스마트 온실에 가시광, 근적외선, 형광 등의 센서, 컨베이어 시설과 로보틱 자동화 장비로 구성된다. 국내 최대 규모로 최대 1012개체를 촬영·분석할 수 있다. 가뭄, 질병 등에 더 잘 견디는 종을 파악하고 유전자까지 확보하면서 육종을 수단계 고도화됐다.
표현형 연구동 설립으로 농진청이 얻은 성과는 괄목할만하다. 농진청은 22년간 확보한 콩 핵심집단 430종의 종자 이미지와 식량과학원에서 육성한 벼 육성집단 100종, 콩 핵심집단 100종의 전 생육기간 생육시기별 이미지를 수집했다. 11종 작물로부터 얻은 이미지는 총 340만장에 이른다.
김경환 농진청 연구관은 “표현체 분석은 해외에서는 한 개 유전자당 3만 달러, 한 개 식물체당 65만원의 경비를 지출해야 한다”면서 “국내에서 분석하면 추산 경비는 20만원 안팎으로 70% 정도 경비 절감 효과와 있고, 연구자들의 민감한 연구 정보도 보호할 수 있다”고 했다.
장소를 이동하자 거대한 냉각탑이 달린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농진청의 두뇌에 해당하는 슈퍼컴퓨터 동이다. 농진청은 지난해 9월 총 사업비 148억 원을 들여 총면적 2057m²에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의 농생명 슈퍼컴센터를 준공했다.
기상청으로부터 슈퍼컴 2기를 관리전환 받아 연구에 활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종자기업 등에서 분석수요가 높은 작물인 고추, 콩, 벼 등을 대상으로 유전형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분석해 디지털 빅데이터를 육종에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 벼 3024개 자원의 유전형을 분석하려면 일반컴퓨터는 6개월에 걸리지만, 슈퍼컴은 4일에 끝낸다.
전통 육종과는 다르게 농업 현장에서 얻는 다양한 정보를 디지털화하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품종의 육종 기간도 단축한다. 전통 육종 과정에서 필수 단계인 수천개 개체 재배 생육 특성을 확인하지 않고도 원하는 형질을 가진 종자를 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병충해와 고온에 강한 벼 종자를 확보하려면 과거엔 각각 형질을 가진 개체를 직접 교배해 2대를 얻었으나 지금은 시뮬레이션으로 진행, 2대의 형질을 파악까지 파악할 수 있다.
이태호 농진청 생명·보건 초고속컴퓨팅 전문센터장은 “농진청은 구매·운영·유지가 어려운 민간(산·학·연)을 위해 국가 주도의 슈퍼컴퓨팅 플랫폼을 보유함으로써 디지털 육종, 기후변화 및 병해충 예측 등 학계, 산업계 등과 공동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고 말했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