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면 최대 명절인 추석을 맞이한다. 이맘 때면 가족과 동료에게 안부를 묻고 서로의 안전과 건강을 기원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주고받는 '안녕(安寧)'의 첫 음절에 이미 '안전(安全)'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는 점은 그만큼 우리에게 안전의 가치가 중요하고 당연하단 뜻이다. 하루 3분의 1 이상을 보내는 일터에서도 마찬가지다. 일하는 사람에 대한 건강과 안전은 이미 세계적으로 경영원칙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공무원의 일터인 공직사회에서 재해예방은 어떠한가? 2018년 '공무원 재해보상법'이 제정돼 공무원 재해예방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그간 재해보상 분야에서 공상추정제 도입, 간병비·치료비 현실화 등 굵직한 제도 개선이 있었지만, 재해예방 근거는 선언적 내용에 불과했고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정책도 충분히 마련되지 못했다.
공무수행 중 재해를 입은 공직자분에게 충분한 보상과 예우를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한 번의 재해는 인적 손실, 심리적 상실, 조직 침체 등 사후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불가역적 피해를 초래한다. 애초에 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이 출발점이 돼야 한다.
그간 공직사회는 산업현장에 비해 위험하지 않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공직자가 국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헌신하고 있다. 경찰.소방공무원의 직무나 산불 진화, 불법 어업단속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심리재해' 요인도 문제가 되고 있다. 공상 승인 건수를 분석해 보면 2022년 재직자 1만명당 업무상 자살 건수가 민간의 약 7배 수준에 달한다. 지난 8월 세종 '공무원 마음건강센터'를 방문했을 때 내담자가 3주를 대기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수요에 비해 공급과 인프라가 부족해서 전문가가 적시에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1:29:300' 1번의 대형 사고 전 29번의 경미한 재해와 300번의 징후가 나타난다는 '하인리히의 법칙(Heinrich's law)'이다. 근래 양상을 보면, 공무상 재해에 따른 손실이 커지고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공무원이 많아지는 등 공직사회도 재해의 적신호가 켜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 제대로 분석하고 적합한 대책을 마련할 골든타임 시기다.
이러한 위기의식 하에 이번 달에 제정 6주년을 맞이하는 '공무원 재해보상법'에도 커다란 분기점이 생겼다. 인사처는 공무원 재해예방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법적 근거를 신설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아울러 지난달 '범정부 공무원 재해예방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진단-예방-회복-관리의 재해예방 프로세스를 발표했다. 스스로 건강을 진단하는 '마음바라보기 주간', 일정 기간 업무를 멈추는 '긴급 직무 휴지 제도' 등 여러 정책을 새롭게 구상했다.
종합계획 발표 후 공무원과 그 가족을 포함한 많은 분으로부터 반가움과 격려의 전화를 받았다. 128만 공무원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업무를 수행하다 재해에 대한 걱정이 생길 때, 더 이상 공무원 개인이나 가족만의 문제가 아님을 기억하길 바란다는 점이다. 이제는 정부와 동료가 여러분의 문제를 같이 해결해 나가고자 한다.
앞으로도 정부는 모범고용주로, 공직자가 우리 일터는 각종 위험으로부터 '당연히 안전한 곳'이라는 인식을 갖고 직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공무원 재해예방 프로세스가 국민을 위한 최고의 행정서비스로 귀결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연원정 인사혁신처장 wjyeon@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