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선도형 국가발전을 열어가는 '도전혁신형 R&D' 확대 전략

전윤종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 원장
전윤종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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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기술강국인 미국의 성공요인을 꼽다보면 '스푸트니크 충격'은 빠지지 않는다. 소련이 세계최초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를 발사하자 미국은 큰 충격과 위기의식에 휩싸였다. 미국은 국가전반의 쇄신을 도모하며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패권을 회복하고자 1958년에 '고등연구계획국(DARPA)'을 출범한다. 이후 인터넷, 개인용컴퓨터(PC), 위성항법장치(GPS), 음성인식, 자율주행,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등 인류 역사에 남을 혁신적 업적이 '고등연구계획국'을 거쳐 나오며 초일류 기술강국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있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한국경제의 추격형 성장모델은 최근 들어 선진국의 기술패권주의와 개도국의 대추격 사이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스푸트니크 충격처럼 어느날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라 가랑비에 젖듯이 난관에 빠져 들고 있어 보다 근원적이고 철저한 대응이 필요하다. 경제전반의 혁신을 통한 선도형 발전모델로의 전환이 절실하다. 기술 패권을 되찾아온 미국처럼, 한국 경제도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와 혁신적인 신기술 개발을 통해 위기 극복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우리 정부도 기술혁신을 강조하며 임무지향형 연구개발(R&D)과 함께 도전·혁신형 R&D를 국가 연구개발 정책의 중심에 두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내년도 R&D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인 5조6000억원(올해 대비 9.6% 증액)으로 편성했으며, 신규 예산의 10% 이상을 도전적 연구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발맞춰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산기평)은 한국형 도전·혁신 R&D모델의 시그니처 사업인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를 비롯한 도전·혁신형 R&D 예산을 확대하고 사업 추진 체계를 대폭 개편할 예정이다.

산기평의 2025년 R&D 예산(안)은 3조3540억원으로 올해 보다 10% 이상 증액된 규모다. 내년도 신규 프로젝트 사업 31개(1447억원) 중 도전·혁신형 사업이 21개(1177억원)를 차지한다. 산업부의 모빌리티, 기계장비, 조선, 로봇 등 고유 임무 분야의 신규 프로그램 사업 예산 중 10%에 해당하는 250억원 이상을 도전·혁신 R&D에 투입할 계획이다.

먼저 대한민국 도전·혁신형 R&D의 대표 사업인 '알키미스트 프로젝트'에 34억원의 신규예산을 투입한다. 더불어 미래 산업 판도를 바꿀 '미래 판기술 프로젝트('알키미스트Ⅱ')'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가 면제되어 내년도 50억원을 시작으로 2034년까지 총 9786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반도체, 미래차, 바이오 등 첨단 및 주력 산업 분야 전반에 도전형 R&D 투자가 본격화된다. 반도체 산업은 첨단패키징 선도기술(178억원)과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용 통신반도체(46억원) 개발을 신규사업으로 지원한다. 새롭게 시작하는 무기발광 디스플레이(180억원) 및 확장현실(XR) 디바이스용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마이크로 디스플레이(54억원) 개발 사업으로 디스플레이 산업 체질 개선을 도모한다. 로봇 분야의 국제공동 자율형 소프트로봇 핵심기술(32억원)을 지원하고, 배터리 분야에선 전기차 배터리의 안전이 담보된 시스템일체형 급속무선충전 기술(40억원)도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 이외에 인공지능(AI) 기반 의료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첨단바이오 분야 투자, AI 자율제조 플랫폼 개발, 차세대 공통·핵심 뿌리기술과 석유화학 무탄소 연료 기반 나프타 열분해(NCC)공정 개발도 도전·혁신형 사업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도전혁신형 R&D' 확대 전략
'도전혁신형 R&D' 확대 전략

그간의 사업추진 경험과 해외의 선진사례를 바탕으로 정부와 산기평은 도전·혁신형 기술개발 사업 맞춤형 지원방안을 마련해 시행할 계획이다.

첫째, 프로그램 디렉터(PD:Program Director)에게 도전·혁신 R&D 사업의 전주기 운영권한을 부여한다. PD는 과제를 직접 기획하고, 평가에 참여하며, 과제의 지속·중단 여부와 사업예산의 증감 여부를 판단한다. PD는 성과에 대한 높은 책임감을 갖고 과제를 탄력적으로 운영하여 연구자의 혁신적 성과 도출을 이끈다.

둘째, 단계별 경쟁형 지원방식을 도입하되 성공가능성이 보이는 경우 중도 탈락 없이 끝까지 지원하는 방식을 적용한다. 다만 필요한 경우 과제별 예산조정, 유관과제 통합 및 과감한 부진과제 중단 등 예외적인 조치도 단행한다. 도전·혁신형 기술개발 사업 운영에 최적화된 지원과 조정 방식을 유연하게 활용한다.

셋째, 연구단계별 점검은 중단 또는 지속(STOP OR GO)방식을 운용하며 최종평가는 성공 또는 실패 등급을 부여하지 않고 성과를 발표하는 형식으로 대체한다. 지금껏 투입지표 중심으로 성패를 판단하던 관행을 개선해 연구과정의 충실성을 높이고, 실질적 사업화 성과에 집중한다. 연구자는 목표달성 실패에 대한 부담을 덜고 도전적인 연구 활동에 몰두할 수 있다.

내년부터 대폭 확대되는 도전·혁신형 R&D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연구자들에게도 새로운 접근과 노력이 요구된다. 2015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오무라 사토시는 “남을 따라 하기 시작하면 그 것으로 끝”이라며 “끊임없이 실패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R&D 현장에서 남을 따라가는 방식을 버리고 인식의 전환과 창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연구자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의식을 갖고 문제를 혁신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정부의 도전·혁신 R&D 지원 체계 확립, 실패를 용인하는 연구 문화 확산, 그리고 연구자들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노력들이 어우러져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신기술이 쏟아지고, 혁신선도형 국가발전모델이 형성되어 나가길 기대한다.

전윤종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 원장 art@keit.re.kr

〈필자〉 정책·경제·통상 분야에 능통한 관료 출신 기관장이다. 군산제일고, 서울대 경제학과, 영국 리즈대 경영대학을 졸업했다. 행정고시 36회에 합격해 1993년 상공자원부 사무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지식경제부 투자유치과장, 산업통상자원부 정책기획관·통상협력국장·통상교섭실장 등을 거쳤다. 주유럽연합(EU)·벨기에 대사관 상무관, KOTRA 교역지원센터장, KAIST 과학기술정책센터 연구교수 등 다양한 이력을 쌓았다. 2022년 9월 R&D 전문기관 KEIT 원장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