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선고된 '기후위기 대응 헌법소원 결정'은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헌법재판소의 이 결정은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우리 사회가 더 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기후변화가 가져올 재난을 예방하고 미래 세대를 보호하기 위한 지속 가능한 대책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이 그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핵심 전략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회와 정부는 물론, 기업까지도 미래 세대를 위해 적극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장기적인 대책을 수립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과제다. 특히, 선거 임기 내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정치적 환경에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후위기 대응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기 어렵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법이 필요하며, 디지털화는 이러한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로 작용할 수 있다.
기업들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체계를 구축하고, 표준을 마련함으로써 기후위기 대응과 지속 가능성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에코바디스(EcoVadis) 같은 클라우드 기반의 지속 가능성 평가 플랫폼이 있다. 에코바디스는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며, 기업의 환경적, 사회적 책임 및 윤리적 경영을 평가해 이를 점수화한다. 175개 이상의 국가에서 100,000개 이상의 기업을 평가하고 있으며, 투명한 평가 과정을 통해 평가받는 기업뿐만 아니라 거래 파트너에게도 신뢰를 제공한다.
하지만 에코바디스와 같은 평가 플랫폼이 모든 산업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정보기술(IT)·소프트웨어(SW) 기업들은 데이터 센터의 에너지 소비와 같은 특수한 문제나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트렌드, 데이터 보안 문제 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 IT·SW 기업들이 개발한 기술은 교육, 의료,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적 문제 해결에 기여하지만, 이러한 공헌이 ESG 평가에서 과소평가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평가 모델의 개선이 필요하며, 기술 혁신이 사회에 기여하는 가치를 충분히 반영하는 방식으로 ESG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중소기업들이 ESG 평가에 참여하기 어려운 점도 문제다. 에코바디스의 인증비용은 최소 수천유로에 달하며, 전문 인력이 없는 기업들은 별도의 컨설팅 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는 국내 IT·SW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한 ESG 경영 진단 파일럿 프로그램을 론칭했다. 이 진단 프로그램은 국내외 평가기관의 IT·SW 산업에 특화된 지표와 최신 디지털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중소기업들도 지속 가능성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표준을 마련할 수 있다.
지난 헌법 판결에서 “과학적 사실과 국제 기준에 근거해 검토해야 한다”는 제언이 여러 번 언급됐다. 정부도 위헌 판결에 대해 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을 위한 과학적인 접근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기존 사회수석실에 속했던 기후환경비서관실을 과학기술수석 산하로 이관하는 조직개편도 단행했다. 글로벌 어젠다인 인공지능(AI), 디지털 전환과 함께 탈탄소 전환을 동시에 추진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의지도 다졌다.
정부의 의지와 더불어 기업들의 노력도 수반돼야 한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들도 ESG 평가를 통해 탄소중립 목표에 기여할 수 있게 함으로써, 국가 전체의 2050년 감축 목표 달성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이런 시의적절한 때에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의 SW·IT 기업 특화형 진단 프로그램은 기업들이 개별 수준을 파악하고 지속 가능한 경영 매커니즘을 수립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파일럿 후 정식 진단을 완료한 기업에는 맞춤형 진단리포트 발급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상 등 포상 혜택도 준비돼 있다. ESG경영 진단 프로그램에 많은 국내 기업들이 참여하기를 바란다.
박연정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ESG위원장·굿센 대표 yjpark@goodc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