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 산업을 갖고 3대 로봇 강국을 감히 이야기했던 우리나라 로봇 산업은 1990년대 후반에 맹아가 싹텄다. 참여정부 때 차세대 성장 동력 사업단의 지능형 로봇 사업단을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주도한 후 지능형로봇법이 수립됐고, 그 성과 중 일부는 한국로봇산업진흥원으로 이어졌다. 다른 일부는 2008년 메카트로닉스 연구조합과 지능형로봇협회가 통합되며 한국로봇산업협회로 이어졌다.
다른 차세대 성장 동력 사업단 성과가 반도체산업협회의 융성, 디스플레이산업협회의 탄생으로 연결됐다. 또 한국전지산업협회로 이어진 반도체·디스플레이·이차전지는 20여년 전과 비교할 때 상전벽해라 할 정도로 우리나라 차세대 먹거리 산업으로 훌륭하게 성장했다. 그러나 로봇 산업은 지지부진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세계 로봇 산업 자체가 아직 여타 산업에 비해 성장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최근 들어 지각변동의 기미가 보이고 있다. 그 시작은 배터리 전기차 스타트업이나 여타 기업들이 주도하는 첨단 휴머노이드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할 때, 대통령직 인수위 과학기술교육분과 전문위원으로 일하며 경제2분과와 12대 국가첨단전략기술과 산업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지능형 모빌리티(첨단 이동수단)' '차세대 원자력' '첨단 바이오' '우주·항공·해양' '수소' '사이버 보안' '차세대 통신' '첨단로봇·제조' '양자' '인공지능(AI)'으로 선정했다. 그동안은 이 배경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채, '초격차' 놀음에만 빠져 '구조화'에 실패한 상황이었다.
당시, 이를 선정하게 된 배경을 인수위 전문위원 입장에서 이제야 설명하자면, 이미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한 국가첨단전략산업인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첨단 바이오' 그리고 '차세대 통신' 등을 바탕으로 이 산업들과 상호 작용해 성장할 수 있는 국가첨단전략기술로 '지능형 모빌리티' '우주·항공·해양' '사이버 보안' '첨단로봇·제조' 'AI' 그리고 '양자'가 잘 버무려져 복합 성장을 꾸밀 수 있도록 '구조화'를 꾀하려 했다. 그러나 여느 정부와 마찬가지로 '의례적인 국정과제가 계획대로 되는 거 봤냐'는 자조적인 이야기처럼 잘되지 않았다.
그나마, '우주·항공·해양'은 우주항공청이 출범했고, '사이버 보안'은 '사이버 안보'와 재조정돼 대통령 사이버 특보를 임명해 첫발을 디뎠다. 'AI'는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위를 출범시키며 스타트를 했지만, '지능형 모빌리티'는 미래차를 포함한 '첨단 이동수단'이 뒤죽박죽인 상황인 데다 일부 배척까지 이어지고 있고, '첨단로봇·제조'는 첨단 로봇과 고난도 제조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양자'는 아직은 기술 한계가 높은 영역이라 기초를 닦아야 할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구조화'에 사실상 실패해 미적대고 있는 쪽이 '미래차'로 대변되는 '첨단 이동 수단' '첨단로봇과 첨단제조'인 상황이다.
'첨단 이동 수단'과 '첨단 로봇과 첨단 제조' 부문은 국가첨단전략기술과 국가첨단전략산업을 '구조화'할 때 어떤 국정 철학을 가져가야 할지 난도가 상당히 높다. 어떻게 보면, 국가첨단전략산업과 국가첨단전략기술로 명확히 구분되는 여타 산업과 기술과 달리, 어쭙잖은 수준의 산업과 기술에 머물러 있기에 가장 섬세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첨단 이동 수단' 자체가 '미래차'로만 대변될 수 없는 것이기에 '미래차'라 하지 않고 '지능형 혹은 첨단 모빌리티'라 했지만, 결국, 여기서 이야기하는 '첨단 모빌리티'와 '첨단로봇, 첨단제조'는 '첨단 로봇'으로 통합해 볼 수 있는 영역이다. 특히, '첨단 모빌리티·제조·로봇'은 중국과 치열한 산업 경쟁에서 외려 우리가 뒤처진 측면이 있어 '첨단화'가 가야 할 길임을 감안한다면 로봇 산업의 판을 새로 짜야 할 상황이 온 것이다.
20여년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육성된 로봇 산업은 '전통 로봇' 부문이었다. 이제 새로운 로봇 산업을 '첨단 모빌리티·제조·로봇'으로 대전환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할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 국정 철학 함의가 그대로 살아 진행됐다면, 적어도 2년 전에 이 구조화가 이뤄졌겠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맹아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다만, 한국로봇산업협회 상근부회장으로 주요 회원사들의 현황을 살펴 보고 다니며 파악한 바로는, 우리 정부의 정책·입법·예산 지원 없이도 민간 그룹사들은 독자적으로 '첨단 모빌리티·제조·로봇' 사업을 훌륭하게 전개하고 있다. 전통 중소 로봇 기업이 아닌, 로봇 산업에 이제 진입한 그룹사들 쪽에서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배터리 전기차 전문 제조사인 테슬라의 '옵티머스', 피규어의 '피규어 XX',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E-아틀라스', 유니트리의 'G-X', 1X의 '네오' 등의 첨단 휴머노이드 로봇이 새로운 시대를 열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나라는 민간 기업들의 준비를 정부 정책과 입법·국정 철학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고급형 서비스용 첨단 로봇이 '엘리베이터도 못 타는 제품'인 점이 우리의 실상이다.
첨단 로봇 100만대 보급을 이야기하지만, 요식 행위로 끝날 우려가 있기에 '첨단 모빌리티·제조·로봇'을 담을 수 있는 대통령실과 중앙행정부처 조직의 개편이 필요하다. 여기에 더해 묵묵히 '첨단 모빌리티·제조·로봇'의 길을 가고 있는 그룹사들이 윤석열 정부가 과학적으로 잘 지원할 수 있도록 지원 기관과 조직도 새 판을 짜서 가야 할 때가 왔다.
박철완 한국로봇산업협회 상근부회장 myriad@korearobot.or.kr
〈필자〉 박철완 한국로봇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서울대 공업화학과 학·석·박사를 졸업하고 한국전자기술연구원 차세대전지 연구센터와 차세대전지 이노베이션 초대 센터장, 차세대전지 성장동력 사업단 기술 총괄 및 간사를 각각 역임하면서 우리나라 초기 차세대 전지 R&D 및 산업 정책을 설계했다. 미국 드렉슬대학교 초빙 연구 조교수를 다녀온 후 박근혜 18대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중앙선대위 디지털종합상황실장, 윤석열 20대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중앙선대위 신속대응 TF장, 20대 대통령직 인수위 과학기술교육분과 전문위원으로 탄소중립, 에너지, 과학기술 R&D 기본 정책, 그리고 12대 국가첨단전략기술과 산업을 구조화하고 설계했다.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로, 지난달 한국로봇산업협회 상근부회장으로 취임했다. 인수위 때 설계했던 국가첨단전략기술과 산업 구조화, 국정철학 구현을 위해 협회를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