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패권 경쟁 시대를 맞아 국내 지식재산권 법·제도 롤모델로 유럽통합특허법원(UPC)이 제시됐다. UPC는 특허 전문성을 보유한 변리사가 특허침해소송을 단독으로 대리할 수 있으며 기술판사가 포진해 있어 특허소송 선진화 모델로 평가받는다.
대한변리사회는 지난 27일 서울 서초구 회관에서 위르겐 펠트마이어 독일 프뤼퍼앤파트너 대표 변리사를 초청해 'UPC 1년간 현황 및 분석' 세미나를 개최했다.
1972년 설립된 프뤼퍼앤파트너는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에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총 9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다양한 국가 출신 변리사 18명이 함께 하고 있다. 특허, 실용신안, 상표, 디자인, 저작권 및 소프트웨어, 제품 무단 복제 및 세관 몰수, 도메인법, 직무발명법, 경쟁법, 지식재산권(IP) 계약, 소송 등 업무를 다룬다.
펠트마이어 대표가 소개한 UPC는 지난해 6월 1일 유럽 단일특허(UP) 제도 시행과 함께 문을 열었다. 유럽연합 내에서 특허소송을 효율적으로 다루기 위해 설립한 재판소로, UPC가 내린 판결은 현재 18개 회원국 전체에 효력이 있다. 최근 루마니아가 합류하면서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던 동유럽 국가의 참여도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펠트마이어 대표는 “하나의 판결로 회원국에 영향을 미치기에 개별 국가에서 일일이 소송을 하지 않아도 돼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면서 “국가마다 다른 판결이 나와 빚어질 수 있는 혼선도 막을 수 있어 굉장히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당초 우려와 달리 사건 접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다. 개원 이래 지난 8월까지 접수된 분쟁 사건 수는 총 476건에 달한다. 이 중 특허침해소송은 181건이며, 소송 특허에 대한 취소 청구는 204건으로 집계됐다. 또 증거보존 및 조사 명령을 포함한 잠정 조치에 관한 신청도 43건이 접수됐다.
UPC의 성공적 안착 배경으론 전문성이 꼽힌다. 변리사가 변호사와 함께 특허침해소송의 '공동대리'조차 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UPC에선 변리사 단독 대리가 가능하다. 대다수 특허침해소송의 중요 쟁점인 특허성 및 침해 판단에 관해 변리사가 전문성을 갖췄기 때문이다.
또, UPC는 법률 판사와 기술 판사로 이뤄지는데, 올해 1월 기준 전체 판사(105명) 중 기술판사(68명)가 3분의 2(64.8%)를 차지한다. UPC는 경우에 따라 기술판사를 반드시 포함하는 합의부가 재판을 하는 게 특징이다. 기업 입장에선 기술 전문성을 가진 소송대리인을 구할 수 있는 데다 기술을 아는 판사로부터 판결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펠트마이어 대표는 “기술판사와 변리사가 특허소송을 진행하기에 질 높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은 특허침해소송을 변리사가 변호사와 공동으로 대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변리사법 개정안이 지난 17대 국회부터 21대까지 다섯 번 연속 발의됐지만, 법조계의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가로막혔다.
특히 지난 21대 국회에서 벤처기업협회를 비롯해 반도체산업협회, 배터리산업협회 등 산업계도 변리사 공동대리 입법화에 힘을 보탰음에도 고배를 마셨다. 이번 22대 국회에서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여섯 번째 도전이 시작됐다.
〈인터뷰〉위르겐 펠트마이어 독일 프뤼퍼앤파트너 대표 변리사
“변리사가 특허침해소송에 참여하지 못 한다고요? 이상하네요.(That's strange.)”
위르겐 펠트마이어 독일 프뤼퍼앤파트너 대표 변리사는 한국에서 변리사가 특허침해소송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펠트마이어 대표는 변리사 없이 변호사로만 구성된 상대방과의 특허침해소송 경험담을 소개하면서 “상대방 변호사의 기술적으로 잘못된 주장을 판사가 그대로 믿었었지만, 기술 전문성이 있는 변리사가 (재판에 있었기예) 잘못된 주장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술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들로만 재판에 진행되면 완전히 다른 결론이 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펠트마이어 대표는 UPC가 개원 초기인 만큼 변리사와 변호사가 함께 소송을 진행하지만, 궁극적으론 변리사만으로 소송을 벌일 것으로 내다봤다.
펠트마이어 대표는 “현재 대다수 소송에 변호사와 함께 변리사가 참여하고 있다”면서 “소송 케이스가 많이 나오는 등 UPC 재판이 어느 정도 정립되면 변리사의 단독 소송대리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실제로 우리 사무소의 경우는 변리사 3명만으로 UPC 침해 및 무효 소송을 대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재학 기자 2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