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되짚어 보면,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발칸 반도의 불안정성은 극에 달했다. 제1차 발칸전쟁, 제2차 발칸전쟁으로 인해 불가리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그리스, 오스만제국 등 전쟁 당사국의 국경은 새로 그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불안정성 속에서 오스트리아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사라예보를 방문할 때 일어난 암살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2020년대의 세계도 불구덩이에 빠지고 있다. 중동과 이스라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은 많은 이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설마 거기까지 갈까 하고 우려했던 극단의 수들이 난무하고 있다.
작금의 국제정세가 두 번의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상황과 유사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고개를 들고 있다. 첫째, 유럽에서 민족주의가 부활하고 독일,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에서 전체주의 정권이 등장하면서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이 그랬듯이 최근 심해지는 종교적, 민족적 원리주의와 전체주의적 리더십은 무력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치열한 경쟁과 견제, 강대국 사이에서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여러 나라의 이합집산이 전통적 국제질서를 흔들고 있다. 둘째, 인공지능(AI) 로봇, 드론 등 스스로 알아서 떼로 움직일 줄 아는 지능형 비대칭 무기가 전장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전차, 전투기, 생화학 무기가 그랬고, 제2차 세계대전 때 항공모함과 잠수함이 그랬듯이 새로운 기술은 곧 전투의 승리를 의미한다. 기존 강대국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국가와 정치세력들이 점점 더 첨단 무기로 무장하면서, 어느 쪽도 일방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혼돈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셋째, 펜데믹 이후 높은 실업률, 경제 불황, 인플레이션, 공급망 불안정 등이 서민의 삶을 피폐하게 하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의 불평등은 국가간, 계층간에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심각한 경제위기 이후에 전쟁으로 휩쓸려 들어갔던 세계대전 시기와 지금의 경제적 불안이 오버랩되면서 불안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넷째, 유엔 등 국제기구의 구심력이 약화하면서 무력 수단의 사용을 억제할 수 있는 중재자가 사라지고 있다. 기후변화나 국제분쟁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해야 하는 국제기구의 역할이 위축되면서 전쟁이라는 극단적 카드를 손에 쥔 국가들을 막아서기 힘들어졌다.
이제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우울한 미래상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한스 로슬링이 '팩트풀니스'에서 제시했던 인류 진보의 증거들은 어쩌면 거대한 퇴행의 전조가 아닐까 하는 불안이 엄습하고 있다. 이러한 불안의 시대에 뛰어난 기술력과 평화지향의 민족성을 지닌 우리나라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다.
지난 50년간 물과 전기의 공급이 불안하고 의식주의 기본이 갖춰지지 않은 1단계(레벨1) 국가에서 교통통신과 생활 여건이 안정된 4단계(레벨4) 국가로 성장한 유일한 국가인 대한민국은 이제 글로벌 문제의 해답을 제시하면서 다시는 세계가 전쟁의 포연(砲煙)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유능한 선진국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모두가 이성을 잃고 끝없는 대결 구도로 치달을 때 강력한 기술력과 국력을 바탕으로 오히려 갈등을 억제하고 평화를 지켜낼 수 있는 역할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한류 콘텐츠를 실어 나르는 스마트폰이 촉진하는 국제 교류와 상호 이해, 권력의 전횡을 감시하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힘, 상처를 입은 병사에게 물과 음식을 제공하며 안전한 대피를 유도하는 드론 기술이 보여주듯이, 같은 기술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쟁의 수단도 될 수 있지만, 평화의 매개체도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