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표 창업지원 프로그램인 '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지원 사업' 팁스(TIPS)가 운영 방식 변화를 앞둔 가운데, 창업생태계 불안이 크다. 민간 투자자 역량을 활용한다는 강점이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업계에서는 약 10년 동안 2800개가 넘는 창업기업을 지원하고, 13조원의 후속투자를 유치한 사업 운영 노하우가 휘발돼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는 내년도 팁스 운영 체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운영기관 선정 절차 명문화, 관리감독 규정 명문화, 운영권을 중기부 산하기관이 맡는 방안 등을 두루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현재는 한국엔젤투자협회가 팁스 운영기관을 맡아 운영사·창업기업 선정, 연구개발(R&D) 과제 관리 등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다 지난 6월 국회 예산정책처가 팁스 사업 평가보고서를 발간하면서 사업 개편 논의가 시작됐다.
보고서는 창업기업 사업화 성과 촉진, 투자회수 지원 강화, 중장기 재정전략 수립 등을 개선사항으로 담았다. 2013년 사업 도입 당시 엔젤투자협회가 공모 절차 없이 운영기관을 맡았던 점과 평가위원회 이해관계자 배제 기준 등이 미흡한 점도 언급됐다. 일부에서는 협회 임원 또는 정회원 소속인 팁스 운영사에게 유리하게 운영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엔젤투자협회는 반발했다. 그동안 투명하게 운영하지 않았다면, 해외가 주목하는 창업 사업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츠는 지난해 11월 팁스를 3년간 1256건의 투자를 이끈 점을 들어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창업기획자(액셀러레이터)' 4위로 선정한 바 있다.
엔젤투자협회 관계자는 “팁스 시행 당시 중소기업청은 초기투자 전문가들이 모인 유일한 기관으로서 투자 전문성을 활용하기 위해 (협회에) 위탁했던 것”이라면서 “사업 운영 측면에서 부족한 점은 보완해야겠지만 지금까지 성과를 이끈 협회 전문성까지 간과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초기투자업계는 개편을 통해 정부 관리·감독이 강해지면, 민간주도라는 정체성을 흔들 수 있다고 걱정한다. 팁스는 운영사가 초기기업에 먼저 투자 후 추천과 심사를 거쳐 R&D 수행기업을 선정한다. 투자사 입장에선 기술력에 사업성까지 고려해야 하다 보니, 일반 R&D 사업 평가와 접근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비수도권 소재, 10대 초격차 분야, 내일채움공제 가입 기업 등에 가점을 주는 것에 대해 “정책적 요소보다 성장 가능성과 역량을 평가할 수 있도록 가점 항목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업계는 민간 주도 장점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단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액셀러레이터 대표는 “어느 정부에서도 '지원 대상에 대한 판단은 전문성을 가진 민간에 맡긴다'는 운영 원칙이 흔들린 적은 없었다”면서 “그간의 성과를 인정하고 꾸준히 보완해야지 한번에 다 바꾸겠다는 시도는 초기투자 저변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송윤섭 기자 sy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