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뇌연구원-존스홉킨스의대, 조현병 등 시각 왜곡 일으키는 신경세포 원리 밝혀

조현병 등 정신질환 환자는 청각이나 시각과 같은 감각 정보를 왜곡해서 인식한다. 일반인도 때때로 착시·환각 등의 증상을 겪는다. 한미 공동연구팀이 이런 현상의 비밀을 풀어줄 수 있는 신경세포의 기본 원리를 찾아냈다.

한국뇌연구원 정서·인지질환연구그룹 김주현 선임연구원이 존스홉킨스의대 홍인기 박사, 리차드 후가니어 교수와 공동으로 뇌에 있는 신경세포마다 방향-위치 특이성이 다른 이유를 밝혀냈다. 연구성과는 최근 '네이처(Nature)' 10월 2일호에 발표됐다.

뇌의 신경세포가 특정 자극에 강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속성 선택성(Feature selectivity)'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신경세포가 '우리 할아버지의 콧수염'같은 특정 자극에만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상으로, 대뇌 피질이 감각 정보를 인식할 때 뇌세포 종류에 따라 정보처리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존스홉킨스의대 리차드 후가니어 교수, 존스홉킨스의대 홍인기 박사, 한국뇌연구원 김주현 선임연구원.
왼쪽부터 존스홉킨스의대 리차드 후가니어 교수, 존스홉킨스의대 홍인기 박사, 한국뇌연구원 김주현 선임연구원.

연구팀이 주목한 대뇌 시각피질의 흥분성 세포는 '특정 방향의 모서리(oriented edge)'에 선택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이는 흥분성 뇌세포에 고유하게 나타나는 방향 선택성이라는 성질 때문이다. 반면 대뇌피질에서 가장 많은 억제성 뇌세포인 PV 뇌세포의 경우 방향 선택성이 현저히 낮게 나타난다.

뇌의 해마에서도 흥분성 뇌세포는 특정 위치에서만 반응이 증가하는 위치 선택성이 나타나는 반면, PV 억제성 뇌세포는 이러한 성질이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억제성 뇌세포가 흥분성 뇌세포에 비해 방향-위치 선택성이 낮게 나타나는데 그 이유가 밝혀지지 않아 현재까지 중요한 난제로 남아 있었다.

연구팀은 오랜 연구 결과 뇌의 신경전달물질 수용체인 AMPA 수용체가 신경세포의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방향-위치 선택성과 관련된 학습을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이 수용체를 구성하는 요소 중 칼슘 선택성을 결정짓는 GRIA2가 속성 선택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연구관련 이미지. A, Two-photon calcium imaging 기술을 이용한 대뇌 시각 피질 또는 해마 뇌세포의 활성도 측정. B, 세포 연결망, 흥분성, 시냅스 가소성에 대한 생리 신호 조사. C, Feature selectivity에 관여하는 AMPAR subunit의 특성
연구관련 이미지. A, Two-photon calcium imaging 기술을 이용한 대뇌 시각 피질 또는 해마 뇌세포의 활성도 측정. B, 세포 연결망, 흥분성, 시냅스 가소성에 대한 생리 신호 조사. C, Feature selectivity에 관여하는 AMPAR subunit의 특성

연구팀은 먼저 단일세포 전사체 분석을 통해 쥐, 원숭이, 인간에서 공통적으로 PV 억제성 뇌세포가 흥분성 뇌세포에 비해 칼슘 투과성이 높은 AMPA 수용체(CP-AMPAR)를 많이 가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유전적 기법을 통해 억제성 뇌세포에서 GRIA2 발현을 통해 칼슘 투과성을 낮추었더니, 흥분성 뇌세포처럼 방향 선택성이 높아졌다. 반대로, 흥분성 뇌세포에서 GRIA2를 없앴더니, 방향 선택성이 사라졌다.

특히 GRIA2 발현을 통해 CP-AMPA 수용체를 감소시킨 억제성 뇌세포의 전기신호를 측정해보니, 시냅스 가소성이 변화하고, 세포 자체의 흥분성이 증가한 것을 발견했다. 비슷한 방식으로 위치 정보를 담당하는 해마에서 억제성 뇌세포의 CP-AMPA 수용체를 감소시켰더니, 흥분성 뇌세포처럼 위치 선택성이 높아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동 교신저자인 존스홉킨스 의대의 홍인기 박사와 리차드 후가니어 교수는 “자폐증이나 조현병, 뇌전증 등의 정신질환에서 나타나는 감각정보의 인지 왜곡 현상도 속성 선택성의 문제로 이해할 수 있다”며 “이런 원리를 밝혀나가면 지능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들 질환의 약물 치료 타깃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국뇌연구원 김주현 박사도 “이번 연구는 '방향'과 같은 시각정보와 '위치'와 같은 공간 인식 정보를 흥분성 뇌세포와 억제성 뇌세포가 어떻게 서로 다르게 처리하는 지 그 작용 원리를 밝혀낸 것”이라며 “우리 뇌가 방향-위치 선택성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규명함으로써 뇌의 감각 정보 처리 방식에 대한 이해는 물론, 새로운 AI 네트워크 구조와 학습 알고리즘 설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뇌연구원은 지난 7월 존스홉킨스의대 조현병센터와 공동연구를 위한 협약(MOU)을 체결하는 등 뇌질환 분야에서 선도적인 연구에 도전하기 위해 국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대구=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