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국토 실현을 위한 '고정밀 전자지도 구축'이 지지부진하다. 윤석열 정부가 국정과제로 선정한 고정밀 전자지도와 3차원 입체지도 구축은 여전히 10% 초반에 그쳤다. 관련 예산도 매년 줄어 내년에는 작년에 비해 반토막이 난다.
6일 공간정보업계와 관계기관에 따르면 내년 고정밀 전자지도 구축에 관한 정부 예산안은 140억여원대로 2년 전인 366억원에 비해 절반을 크게 밑돈다. 올해 예산은 176억원 수준이다.
문제는 사업 진행 방식이다. 고정밀 전자지도 구축 예산은 국비와 지방비 5대5 매칭 구조다. 축척 1대1000인 수치지형도는 재정자립도가 높은 서울은 100% 구축했지만 이 외 지역 대부분이 지방비 확보가 어려워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실정이다.
지난해에는 국비와 지방비 5대5 매칭 펀드로 기존 100억원대에서 예산을 늘려 366억원을 편성했다. 그러나 이미 예산 편성이 끝난 지방 정부는 이를 따라가지 못했고 지방 수요도 미진했다. 이에 사업 발주 시기가 늦어졌고 이듬해인 올해는 전년도 예산을 12월 말까지 소진하지 못해 176억원으로 줄었다. 내년 예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도는 구축만큼 환경 변화에 따른 갱신도 중요하다. 도로와 건물 등 환경이 바뀌면 이를 반영해야 하지만 지자체에서는 신규 구축도 못한 지역이 많아 갱신비까지 부담하려는 곳은 거의 없다.
국토지리정보원 관계자는 “3~5년 정도만 흘러도 신규로 지도를 구축해야한다”면서 “매년 갱신비가 신규 구축 비용보다 10분의 1 수준으로 적게 들지만 이를 부담스러워하는 지자체가 많다”고 설명했다.
고정밀 전자지도나 3D 입체지도 구축은 재난·교통·환경 등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수다. 실시간 정보에 기반해 재난을 직관적으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어 재난 예방에 활용할 수 있다. 윤 정부는 국토 디지털화를 통해 국토공간의 효율적인 성장전략을 지원하는 것을 국정과제로 선정한 바 있다. 대한민국 인구 90%가 살고 있는 도시지역 1만7769km 구축을 완료하는 것이 목표다.
국정과제로 선정된 이후 국토지리정보원은 지자체를 돌며 애로사항을 접수하고 사업 명칭도 기존 1대1000 수치지형도에서 '고정밀 전자지도'로 바꿨다. 지도 제작방법도 기존 항공 중심에서 지자체가 원하는 드론, 모바일 맵핑 등으로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지자체 애로를 해결하면서 수요도 늘었다. 사업 2차 수요조사에서 지자체 한 곳만이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지난 달 말 3차 수요조사에서는 선정 기준보다 두 배의 지자체가 사업 참여를 신청했다. 이 같은 신청률은 해당 사업을 벌인지 30여년 만에 처음이란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자체 수요가 늘었지만 여전히 고정밀 전자지도 구축율이 10% 초반대에 머물러있는 만큼 구조적 한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규 지도 구축은 지방비와 5대5 매칭방식을 유지하더라도 갱신 비용은 전액 국비로 부담해야한다는 것이다. 또한 매칭 대상을 지자체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정부나 공공기관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이나 각 중앙부처에 흩어져있는 관리 주체를 일원화해야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석배 경상국립대 건설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국정과제 대토론회에서 “고정밀 3D 전자지도를 통해 오송 지하차도 침수, 이태원 참사 등과 같은 자연적·사회적 재난을 사전 예측해 대응함으로 안전한 대한민국 건설에 이바지 할 수 있다”면서 “공간정보구축 및 관리법 조항을 수정해 제도를 명확히 해야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정밀 전자지도의 효과적 활용을 위해 모든 정보가 통합되고 일원화될 필요가 있다”며 “지지부진한 예산 투잎을 앞당긴다면 공간정보 르네상스 시대를 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효주 기자 phj20@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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