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에 수조원 보조금 쏟아붓는 美·中·日…한국은 '0원'

미국·일본·중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수조원 규모 보조금을 쏟아붓고 있지만 한국 정부 지원은 '0원'에 그쳐 정부 지원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경제인협회는 7일 '주요국 첨단산업 지원정책 비교·시사점' 보고서를 발간하고 첨단산업 보조금 정책으로 미국이 시행 중인 '직접환급(Direct Pay)'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직접환급 제도는 기업이 납부할 세금보다 공제액이 더 크거나 적자가 나 납부할 세금 자체가 없는 경우, 그 차액이나 공제액 전체를 현금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즉각적으로 기업에 현금 유동성을 제공할 수 있다.

보고서는 “한국은 기업 대상 세액공제와 같은 간접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며 “정부의 재정건전성 유지는 필요하지만 첨단산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원은 국민경제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미국이 시행 중인 직접환급 제도 같은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23년 국가·산업별 대표기업 자국 보조금 규모와 매출액 대비 보조금 비율(자료=한국경제인협회)
2023년 국가·산업별 대표기업 자국 보조금 규모와 매출액 대비 보조금 비율(자료=한국경제인협회)

반도체 산업에서 미국은 칩스법에 서명, 인텔에 85억달러(약 11조4571억원) 보조금 투입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은 지난해부터 반도체 기업 SMIC에 2억7000만달러(약 3693억원) 보조금 지급을 시작했다. 일본은 반도체 산업 재부흥을 위해 연합 반도체 기업인 라피더스 설립에 63억달러(약 8조4918억원)가 넘는 보조금을 투입했다.

이차전지의 경우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전기차 보조금을 이용해 미국 내 생산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자국 시장을 보호하면서 중국에 대응하고 있다. 이차전지 부품의 최소 절반 이상을 북미에서 생산·조립한 경우에만 보조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해외 기업들이 현지 생산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전기차 배터리 업체 CATL에, 일본은 토요타에 이차전지 산업 지원을 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반도체와 이차전지 산업 모두 보조금 지급 정책이 없다.

세계 시장을 석권했던 한국 액정표시장치(LCD) 산업은 중국 정부가 2012년부터 '전략적 7대 신성장산업' 중 하나로 선정해 대규모 보조금을 투입한 후부터 가격경쟁력을 상실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경협은 보조금 지원 외에 일원화된 경제안보 콘트롤타워 체계를 탄탄히 하고 정책·관련법을 시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미국은 2021년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을 장관급으로 격상, 단일 조직에서 산업과 안보 정책을 추진 중이다. 중국은 총리 산하였던 과학기술부를 작년에 국가 주석이 관할하는 당 중앙위원회로 격상해 지도부가 직접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한다.

일본도 중국의 희토류 수출제한 이후 경제안보 역량을 지속해 강화해왔다. 일본은 2021년 장관급 조직인 경제안보담당관실을 설치해 총리 주도의 범부처 통합 대응체계를 구축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주요국들의 반도체·이차전지·디스플레이에 대한 지원정책 강화는 첨단산업 주도권 상실이 곧 국가안보 위협이라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결과”라며 “첨단산업 투자는 안보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신영 기자 spicyzer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