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개발 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타깃 단백질에 대한 약물 작용점(MOA)'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등한시하고는 신약 개발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 영역에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이 높은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그 주인공, 충북 오창에 자리를 잡은 첨단바이오의약연구부 구성원을 만나 관련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류경석 KBSI 첨단바이오의약연구부장은 MOA 파악이 곧 '약물이 타깃 단백질과 정확히 만나 작동하는지 여부'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약물이 타깃 단백질과 상호작용하지 않고도 약효를 발휘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신약개발 실패'로 귀결된다는 것이 류 부장 설명이다.
그는 “생명은 워낙 복잡해 신약이 당초 계획한 작용점과 상관없이 효능을 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작용기전이 부정확해 부작용이 발생할 때 원인 파악이나 대응이 어렵고, 신약 승인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우리 연구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고 피력했다.
뒤이어 이를 위한 '무기'를 접할 수 있었다. '핵자기공명(NMR) 분광기'다. 부서 내 이를 담당하는 NMR 연구그룹의 이동한 박사에게서 소개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박사에 따르면 NMR은 자기장 속에 놓인 원자핵이 특정 주파수 전자기파와 공명하는 현상이다.
이 박사는 “NMR 분광기 원리는 자기공명영상(MRI)과 유사한데, MRI가 이미징으로 위치를 파악한다면 NMR은 에너지 준위를 분석해 분자 형상을 파악한다”며 “이렇게 분자구조, 화학성분 변화 등을 파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당연히 단백질과 결합하는 약물 작용기전, 특성을 밝혀낼 수 있어 신약개발 과정 리스크를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그룹은 이런 NMR 분광기를 다수 갖추고 있었다. 400, 600, 700, 900메가헤르츠(㎒) 장비를 갖추고 있고 최근 세계에서 가장 주파수가 높은 1.2기가헤르츠(㎓) 분광기도 도입했다.
실제 마주한 1.2㎓ NMR 분광기에는 '10'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10번째 장비라는 뜻이라고 했다. 미국보다 빠른 계약이며, 아시아에서 최초 도입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세계에서 1㎓ 이상 장비는 22개에 불과하다고도 했다.
이를 안내한 김은희 NMR 연구그룹장은 “약 200억원에 달하는 도입비용이 들었는데, KBSI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원에 힘입어 연구역량 강화, 미래를 위해 투자를 한 것”이라며 “연내 시범 운영하고, 내년부터 정식 운영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룹은 NMR 관련 인프라를 면밀하게 갖춘 곳이다. 필요한 대응이 가능한 다양한 자기장의 NMR 분광기를 기반으로, 단백질-약물 작용기전을 규명할 수 있는 바이오피직스(생명체 내 분자 기전을 물리적으로 규명하는 개념) 분석장비와 기술을 두루 갖췄다.
류 부장은 “MOA 연구에는 NMR, 방사광가속기, 초저온 투과전자현미경(Cryo-EM) 등 서로 다른 분석 영역이 고려돼야 하고, 이들을 연결할 수 있는 바이오피직스 분석 또한 중요하다”며 “이곳 한 자리에 다양한 인프라를 갖춰, 높은 시너지를 낸다는 것이 우리 그룹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장비만큼 인력도 중요하다. 류 부장은 그룹 인력이 세계적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 박사만해도 국내 대기업 요청을 거절하고 막스플랑크 그룹리더, 미국 루이빌대 석좌교수를 거친 유망한 연구자다. 2년 전 KBSI에 합류했다.
류 부장은 “NMR 분광기 장비와 기술을 잘 아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장비도 소용이 없다”며 “우수한 인력을 바탕으로 우리 그룹이 국내 신약 개발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