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리튬이온배터리보다 더 오래 쓰면서 안전한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이 한창인 가운데 배터리 혁신이 소형 정보기술(IT) 제품부터 시작될 전망이다. 웨어러블·모바일 기기에 적용할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와 흑연 대신 실리콘 100%를 적용한 퓨어실리콘 배터리 상용화가 다가오면서다. 전기차보다 배터리 용량이 작아 상대적으로 개발 속도가 빠른 소형 분야부터 차세대 제품 시장이 열릴지 주목된다.
삼성전기는 최근 산화물계 초소형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을 완료하고, 주요 고객사에 시제품을 공급해 평가를 받고 있다. 2026년 양산을 목표로 상용화를 추진 중이다.
초소형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성공한 건 삼성전기가 업계 최초다. 전고체 배터리는 액체 전해질을 불연성 고체로 바꾼 전지다.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는 물리적·전기적 충격을 받으면 인화성 액체 전해질에 불이 날 가능성이 높지만, 전고체는 이같은 위험성이 낮다.
또 리튬이온 배터리는 작게 만들면 내부 판이 접혀 주름이 발생할 수 있고 충전시 내부 팽창으로 여유 공간 확보도 필요한데, 전고체 배터리는 이같은 점에서 자유로워 소형화가 가능하다.
여기에 산화물계 전고체 배터리는 얇게 인쇄한 고체 전해질 재료를 적층한 뒤 절단해 주름이 발생하지 않고, 충전시 부피 변화도 없어 초소형을 구현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형화와 안전성에서 특장점이 있기 때문에 삼성전기는 시계나 이어폰 등 신체에 밀착하는 웨어러블 기기 적용을 추진하고 있다. 갤럭시워치나 갤럭시버즈 등 삼성전자 기기가 우선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초소형 전고체 배터리를 쓰면 기기를 더 작고 경량화할 수 있어 기존 폼팩터와는 다른 차별화된 디자인도 가능할 전망이다.
음극재에 흑연을 쓰지 않고 실리콘 소재만 사용하는 퓨어실리콘 배터리도 모바일 기기용으로 상용화가 임박했다.
북미 최대 IT 업체가 자사 모바일 기기에 흑연을 쓰지 않는 퓨어실리콘 배터리 적용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용량, 충전 시간, 수명 등을 테스트하는 개발 막바지 단계로, 이르면 내년부터 이어폰 등 일부 제품에 퓨어실리콘 배터리를 탑재하고 점차 다른 기기로 적용 분야를 늘릴 예정이다.
현재 배터리 음극재로 쓰이는 주요 소재는 흑연이다. 실리콘은 이론적으로 흑연 대비 10배 더 많은 리튬을 저장할 수 있다. 음극에 흑연 대신 실리콘을 적용하면 한 번 충전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배터리 사용 시간이 증가하고 충전 시간도 단축된다.
모바일 기기에 퓨어실리콘 배터리가 적용되면 한 번 충전으로 모바일 기기 사용 시간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동시에 새로운 모바일 경험을 제공하는 이점을 제공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리콘은 충·방전 과정에서 부피가 최대 400%까지 팽창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그동안 업계에서는 5% 수준으로 소량 첨가하는 방식이 사용돼왔다. 퓨어 실리콘 배터리 상용화가 가까워졌다는 것은 이러한 팽창 문제를 극복하는 기술이 확보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는 IT용 배터리보다 용량이 크기 때문에 고체 전해질이나 퓨어실리콘 기술 적용이 상대적으로 더 어렵다”며 “소형 기기를 시작으로 차세대 배터리 적용 범위가 넓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 정현정 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