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청이 관리·감독해야 하는 특수법인인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이른바 특정 업체에서만 유물을 매입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관련법에 따른 특수법인인 만큼 정부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재원 조국혁신당 의원이 국가유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문화유산국민신탁은 지난해와 올해까지 특정 업체(고미술인, 갤러리문우)에서만 유물을 매입해왔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 2년여에 걸쳐 고미술인으로부터 1억 1000만원어치의 유물 10건을 구매했다. 갤러리문우로부터는 17건 총 8100만원을 사용해 유물을 구입했다. 고미술인 대표인 강모씨와 갤러리문우 대표 김모씨는 모두 문화유산신탁재단 회원이다. 결국 재단 회원이 보유한 물품을 구매한 셈이다.
특히 김모씨는 지난 2020년 매입심사 자문위원회 심의위원으로 참여해 자신의 회사인 갤러리문우의 등기임원인 조모씨가 문화유산국민신탁에 유물을 판매하는 과정에 영향력을 끼쳤다는 의혹도 있다. 외부 심의위원회가 사실상 유물의 구입 여부나 가격 등을 결정하는 것을 고려하면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유물 구매와 관련한 문제를 지적받은 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가유산청(당시 문화재청)은 지난 2018년 문화유산국민신탁에 대한 감사를 통해 김종규 이사장이 대상유물을 선정한 후 별도 평가 심의 없이 유물을 매입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난 2020년에도 문화재청 자체 종합감사에서 유물 구입처 몰아주기 정황을 지적받았다. 이듬해인 2021년에는 국정감사에서도 특정 업체 유물 구매 의혹이 드러난 바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문화유산국민신탁의 구조적인 문제 탓으로 분석한다.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은 현재 5연임 중이다. 2009년 취임 이후 오는 2027년까지 총 18년간이다. 특히 김 이사장은 문화계 사교모임인 월단회를 창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역시 월단회 회원으로 전해졌다. 월단회는 지난해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김 여사와 김 후보자의 연결고리라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자산에 관한 국민신탁법'에 따른 특수법인으로 국민참여(증여·후원) 등을 통해 보존가치가 있는 유물을 구입·기탁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들은 연간 10억원 안팎의 국비를 수령하고 있으며 올해도 11억원이 넘는 국가 보조금과 약 6억 5000만원의 지자체 보조금도 지원받았다. 여기에 올해 기부금까지 더하면 문화유산국민신탁 내 일반회계와 특별회계 등을 포함한 총예산은 올해만 약 76억원이다.
정치권에서는 문화유산국민신탁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유물매입대금 환수, 김종규 이사장의 사퇴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의원은 “2020년 스타벅스가 기부한 김구 유묵매입 부당행위는 2020년 감사 직후에 발생했다. 김 이사장이나 이해관계자들이 유산청 감사 정도는 가볍게 여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숱한 감사 지적과 논란 속에서도 김 이사장이 5연임에 성공한 것 또한 국가유산청과 정권의 비호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기창 기자 mobydi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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