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제4차 산업혁명으로 디지털(AI), 물리학(로봇), 생명공학의 융합 창발을 예견했고, 같은 해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결 이후로 인공지능(AI)은 급속도로 발전해왔다.
2022년 챗GPT 등 초거대 언어모델을 계기로 AI 발전은 가속화되고 있다. AI 기술 발전은 데이터 처리와 분석 방식에 혁신을 가져왔다. 더 많은 데이터를 실시간 처리하고 인사이트를 도출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한다.
이런 요구에 부응하려면 AI 학습과 추론 등 인공신경망 알고리즘에 최적화된 반도체 개발이 필수다. 특히 AI 반도체는 인지·분석·판단이 요구되는 사물인터넷(IoT), 제조, 자율 주행·비행·항행, 로봇, 국방무기 등으로 사용처가 확대되고 있어, 미래 신산업 핵심 동력으로 주목받는다.
AI 반도체는 기존 중앙처리장치(CPU)와 다르게 복잡한 상황을 인식·판단하는 일이 가능하다. 대량의 데이터를 동시(병렬) 처리하는 특성을 띠고 있다.
최근까지 AI 반도체 역할을 했던 것은 그래픽처리장치(GPU)다. GPU는 그래픽 처리를 위해 만들어진 병렬처리 반도체로, 여러 그래픽 코어 프로세서를 장착해 대규모 연산 때는 CPU보다 성능이 우수하다.
그러나 비용·전력 소모에서 비효율적인 부분이 있다. CPU, GPU 대비 범용성은 낮지만 AI 알고리즘에 최적화된 AI 전용 반도체가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
AI 전용 반도체는 AI 딥러닝에 특화됐다는 의미에서 흔히 신경망 처리장치(NPU)라 부른다. 최근 저전력으로 고성능을 낼 수 있도록 인간 뇌를 본따 만든 뉴로모픽 반도체도 연구 중으로, 차세대 AI 반도체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AI와 AI 반도체 기술 패권은 세계적으로 주요 강국들 간 치열한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세계 각국 정부는 AI 기술과 반도체 산업을 통합한 전략도 마련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AI를 필수 기반 국가전략기술로 선정해 AI 모델, AI 반도체, AI 서비스 등 AI 전 영역에 대한 기술 혁신과 지속 가능한 AI 생태계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AI 반도체 가치사슬 분야별 강점을 분석해 AI 반도체 9대 기술혁신 과제인 'AI-반도체 이니셔티브'를 통해 우리나라가 글로벌 AI 3위로 도약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몇몇 업체들이 AI 반도체 해외 선두 업체 패권에 도전하고 있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정부 정책과 연계해 범용AI(AGI) 등 차세대 AI 핵심기술 개발에 선도적인 역할 및 AI 반도체 하드웨어(HW)·소프트웨어(SW) 기술 생태계 조성 허브 역할을 하고자 한다.
AI 반도체는 논리 및 연산 장치,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 그리고 이 두 개를 구동하는 SW 플랫폼 및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 모델의 세 부분으로 이뤄진다.
앞서 언급한 NPU 등은 논리·연산 장치고, 요즘 화두가 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가 대표적 메모리다. 또 엔비디아의 쿠다(CUDA) 등이 SW 플랫폼 및 API 모델이다. HBM을 AI 반도체 일부분으로 보는 것은 메모리와 논리 및 연산 장치 코어가 패키징 기술에 의해 하나의 반도체로 되는 추세기 때문이다.
ETRI 연구진은 2017년부터 NPU를, 2022년부터는 NPU-HBM을 이종 집적하는 프로세싱 인 메모리(PIM) 반도체를 연구하고 있다. 인간의 뇌 뉴런과 시냅스 구조를 모사한 저전력 뉴로모픽 반도체 역시 연구 중이다. AI 가속기를 제어하는 RISC 프로세서 개발 역량도 다양하게 확보해 왔다.
2020년 일찌감치 NPU 기반 초고성능 프로세서로 고성능 서버 등에 활용 가능한 국내 최초의 AI 반도체 AB9을 개발한 성과도 있다. AI 반도체 구동을 위한 SW 플랫폼, 메인 컨트롤러로 RISC-V와 같은 CPU 관련 기술도 보유한 상태로 새 화두로 떠오른 AGI 실현을 위한 AI 반도체 설계 기술 연구에도 매진하고 있다. 보유한 연구진의 핵심기술을 소개하고자 한다.
◇칩렛 기반 PIM반도체 기술
최근 칩렛 기반 기술이 이슈인데 칩렛이란 반도체 제조 기술에서 단일 칩으로 구성된 시스템을 여러 개 소규모 칩으로 나눠 구성하는 방법이다. 최근 고성능 컴퓨팅 요구와 반도체 제조 공정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혁신적 접근법으로 주목받는다.
연구진은 칩렛 기반 PIM 반도체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PIM 기술은 데이터 전송 병목 현상을 해결하고, 메모리와 프로세서를 결합해 높은 성능을 제공할 수 있다.
이런 기술은 특히 대규모 AI 모델 학습 및 추론 과정에서 큰 이점을 제공한다. 연구진은 실효율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칩렛 이종집적을 적용한 고성능 PIM 반도체를 개발 중이다. 현재는 칩렛 이종집적 첨단 패키지 시제품을 개발한 상태다.
◇초저전력 RISC-V 프로세서
또 초저전력 RISC-V 프로세서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RISC-V 아키텍처는 오픈 소스 구조로, 설계 유연성을 극대화해 맞춤형 반도체 개발을 가능하게 한다.
AI 반도체는 전력 소비를 줄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초저전력 설계는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연구진은 특히, 중소 팹리스 업체 활용성을 높일 수 있는 IoT·웨어러블 분야 반도체 개발에 특화된 초저전력 반도체 설계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아울러 RISC-V 기반 시스템반도체를 쉽고 빠르게 개발할 수 있는 자동설계기술인 RISC-V eXpress 기술도 개발했다.
◇뉴로모픽 반도체
뉴로모픽 반도체는 뇌 신경 운용 구조를 모방한 아키텍처로, 인간 인지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기술은 AI의 미래를 바꿀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ETRI에서는 이런 뉴로모픽 기술 기반 혁신적인 반도체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연구진은 디지털 뉴로모픽 반도체 선도기업인 인텔의 로이히 대비 기능 및 성능 측면에서 차별성·우수성을 갖는 아날로그 뉴로모픽 컴퓨팅 반도체 원천기술을 개발 중이다.
◇칩렛 인터페이스
마지막으로, 칩렛 인터페이스 기술은 다양한 기능을 가진 칩렛들을 연결해, 모듈화된 반도체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는 다양한 응용 분야에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어 시장의 빠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해준다.
칩렛은 미세회로 기판인 인터포저 위에 여러 개 다이를 연결해 단일 패키지의 시스템 온 칩(SoC)으로 제작한다.
더불어, K클라우드 예타 사업 일환으로 AI 반도체 구동 SW플랫폼 기술도 추진되고 있다. 엔비디아의 쿠다가 말해주듯이, 현재 AI 반도체 시장 경쟁력은 SW플랫폼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범국가적인 연구개발(R&D) 역량을 결집해서라도, SW플랫폼 관련 기술은 반드시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챗GPT 등 거대언어모델 AI 반도체 사용처는 주로 클라우드 기반인데, 더 빠른 서비스를 위해 장치에서 직접 AI를 처리하는 온디바이스 AI 반도체 기술도 점차 각광받고 있다.
AI 반도체는 앞으로 신산업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혁신을 넘어, 국가 경제와 산업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는 중요 요소로 자리 잡을 것이다.
AI 반도체 기술 선점은 분명 새로운 일자리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이로 인해 국가 경쟁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기업, 연구기관이 협력해 AI 반도체 R&D에 더욱 집중해야 하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노력이 필요하다.
AI 기술 패권과 AI 반도체의 관계는 앞으로 더욱 긴밀해질 것이며, 이는 국가 간 기술 경쟁에서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AI 반도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위한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더욱 요구되는 시점이다. ETRI도 AI 반도체 분야 선도적인 연구기관으로서, 대한민국의 기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방승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scbang@etri.re.kr
〈필자〉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전자공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ETRI 연구원생활을 시작해 무선전송연구부장, 미래기술연구본부장, 통신미디어연구소장 등을 역임하고 2022년 말 원장에 취임했다. 그동안 디지털신호처리, 이동통신 등 분야에서 SCI급 논문을 다수 발표하고 1400건 가까운 국내외 특허출원, 721건 특허 등록 실적을 거뒀다. 2006년 국무총리 표창, 2014년 한국공학상, 2021년 해동기술대상을 받았다. 올해는 통신 강국 발전 공로로 과학기술훈장 웅비장을 받았다. 올해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에 선정됐고 2023년 제19대 대덕연구개발특구기관장협의회(연기협) 회장으로 선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