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에 대해 국내 법학 전문가뿐만 아니라 해외 전문가도 우려를 제기했다. 법 체계 혼란만 가중할 뿐 실익이 전혀 없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인협회·대한상공회의소 등 국내 8개 경제단체와 한국기업법학회가 15일 서울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공동 개최한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논란과 주주이익 보호' 세미나에서는 이같은 의견이 제기됐다.
현재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은 10월 22대 국회 개원 후 지금까지 8건이 발의됐다.
기조발제를 맡은 토리야마 쿄이치 와세다대 로스쿨 교수는 “주식회사의 이사가 회사와 위임계약 관계를 맺고 회사에 대한 선관의무와 충실의무를 지는 과정에서 주주 공동의 이익이 구현되는 것이지 이사가 주주에 대해 별도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이사가 주주에게 직접 의무를 지도록 법률을 개정하면 지금까지의 회사법 체계에 어긋나게 된다”며 “채권자 등 다른 이해관계자 권리까지 침해하게 되는 데다 이사가 임무를 게을리해 주주가 직접 손해를 입으면 회사법상 손해배상청구소송 등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으므로 개정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상법 개정안이 국내와 체계가 전혀 다른 영미법계 법리를 그대로 적용한 것이어서 수용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왔다.
박준선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영미법계는 판례 중심으로 이사 충실의무를 포함한 신인의무를 인정하지만 한국 회사법은 법조문에 규정된 회사와 이사 간 위임관계에 기반해 이사 충실의무를 인정하므로 완전히 다르다”며 “미국 판례에서 인정하는 신인의무 법리를 그대로 이식하면 향후 판결에 미칠 영향을 고려할 때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관의무, 충실의무, 주주이익 보호, 환경·사회 등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항 등을 열거해서 담은 수정안을 제안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기업 분할·합병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수주주 피해를 이사 충실의무 확대로 해결하려는 것은 올바른 해법도 아니고 효과도 기대할 수 없어 반대한다”면서 “오히려 이사의 책임을 면제해 줄 '경영판단원칙'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