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로보틱스·미래항공모빌리티(AAM)까지 인공지능(AI)이 적용된 모빌리티는 우리의 미래를 바꿔줄 신기술로 성장하고 있다. 특히 자율주행차는 이미 우리 삶에 가장 밀접하게 닿아있는 '자동차'에 적용될 기술이기에 미래 모빌리티 대표주자로 손꼽힌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프레지던스리서치에 따르면 2030년 자율주행차 시장규모가 177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때문에 자율주행차 시장을 두고 글로벌 주요 국가의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이 심화되고, 최근 미국과 중국의 기술 수준은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로 빠르게 약진하고 있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빠르게 성장시키며, 이러한 경쟁 시장에서 대한민국 기업은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미국과 중국이 왜 경쟁력 우위를 점하고 있는지를 알아보자. 첫째는 신산업 초기에 투입되는 막대한 투자비를 감당할 수 있는 자본을 보유한 일명 '천조국(千兆國)'들이다.
세계 자율주행 순위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미국 구글의 웨이모의 '올해 손실액은 2조4000억원(약 15억달러)에 이르지만 앞으로 6조8000억원(약 50억달러)을 추가 투자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어 세계 2위 제너럴모터스(GM) 크루즈는 지난 6월 누적 손실액이 11조원(약 80억달러)을 넘었지만, 1조2000억원(약 8억5000만달러) 추가 투자를 받았다. 중국도 이에 뒤지지 않는데 차이점은 국가가 주도해 민간에 투자해 신산업을 육성한다는 점이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분석 자료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2022년까지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에 보조금으로 약 239조원을 지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정부가 2021년부터 2027년까지 자율주행 산업을 육성하고 있는 국가 연구개발(R&D)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의 예산 규모가 1조1000억원인 점과 비교해도 미국과 중국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다.
특히 자율주행 기술이 고도화되기 위해서는 실제 도로에서 운행을 통해 데이터를 쌓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엣지케이스(자율주행 기술을 고도화 시킬 수 있는 중요한 돌발상황)에 대한 로직을 개선해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 대비 턱없이 적은 자본력으로는 많은 자율주행차를 제작할수도 운행할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9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도로에서 운행 중인 자율주행차는 총 445대이다. 반면 미국은 2023년 캘리포니아주에서만 총 2552대 자율주행차가 운행 중이며 중국은 우한 1개 도시에서만 2000대의 자율주행차가 운행 중이다. AI가 학습하는 양 자체가 이렇게 차이가 큰데 어떻게 기술력이 따라갈 수가 있을까. 애초에 출발점 자체가 평행하지 않은 경쟁이다.
그렇다면 자본력, 결국 단순히 돈이 많아서 그들이 잘하는 것인가? 아니다. 둘째로 손꼽을수 있는 것이 국가의 제도적 지원이다. 미국은 자율주행 법규를 제정하지 않고 가이드라인만 유지하는 것을 고수하고 있다. 2016년 9월 미국교통부(NHTSA)는 자율주행차 가이드라인 버전 1.0을 제정해 자율주행 안전과 관련한 15개 분야에 대해 법적구속력이 없는 정부 방향성만을 발표했다. 이를 지속 업데이트해 현재는 버전 4.0까지 발표한 상태다. 미국 교통부는 이러한 제도적 자유도가 기술 혁신을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고 믿는다. 결과물로 탄생한 시총 1000조원 테슬라라는 빅테크 기업이 그러한 믿음에 확신을 주기도 했으며 앞으로 강제성 있는 법규를 제정할 계획이 없다. 더욱이 미국 자동차 법규는 원래 금지되는 것만 명시하고 나머지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기에 자유도가 높았던 태생적 특성과 더해져 비규제에 가까운 자율주행차 제도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국가 특유의 대형스케일로 이에 응수하고 있다. 바로 '자율주행기술 적용 시범도시제'인데 국가가 정한 시범도시에서는 모든걸 다 허용하는 방식이다. 근데 이 시범도시 규모가 너무 커서 신기술 개발 보고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시범도시로 지정한 우한 규모는 서울의 14배가 넘으며 여기서 2000대의 자율차가 운행 중이다. 연간 90만명의 탑승자가 이를 이용하고 있다. 미국의 'M-시티(City)', 일본의 'J-타운(Town)'처럼 타국가가 도시와 유사한 자율주행시험장을 구축할 때 중국은 진짜 시티와, 진짜 타운인 실제 도시를 지정해 테스트를 허용해준 것이다. 게다가 우한과 같이 이미 개방된 공공도로 거리가 이미 3만2000km에 이른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도로의 30%에 해당하는 길이일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자율주행 시범운행지구 길이가 약 500km 수준인 것과 수치적으로 비교해도 중국의 스케일이 얼마나 엄청난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대한민국 기업이 글로벌 경쟁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필자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자율주행차를 운행 중인 기업 대표인 만큼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다. 각계의 전문가마다 의견이 천차만별이고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겠지만, 필자의 견지에서는 '시장의 단계에 적합한 허용과 제한의 교차활용'이라고 생각한다. 즉 시장의 개화단계에서는 전면적 허용으로 산업의 육성을 촉진하고, 성장단계로 접어들면 허용항목을 줄이고 체계를 구축해 산업의 성장기반을 조성하고, 성숙단계로 접어들면 허용보다 제한항목을 늘려 안정적 산업의 정착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3월 우리나라가 전 세계 세 번째로 레벨4 자율차의 기업간거래(B2B) 법령을 제정한 것도 본견지와 같은 취지라고 생각한다. 즉 자율주행차 가장 넓은 시장이라고 할수있는 기업소비자간거래(B2C) 시장이 열리기 전까지, 정부와 운수사업자 대상의 판매만 허용해 산업 육성을 촉진하고 사회적 수용성 향상과 신산업 기업의 생존을 도모하는 법령제정이야말로 대표적 '시장의 단계에 적합한 허용과 제한의 교차활용' 사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타산업인 전기차 영역을 보자. 환경부는 전기차가 탄소배출 대안이 될 수 있음을 근거로 2012년부터 전기차 보급 사업을 시작했다. 첫째로 자동차 제조사에게 일정 비율 이상 생산해야하는 의무를 부여했으며 둘째로 공공부문에서도 무공해차 구매비율을 할당하는 의무구매제를 시행했다. 또 친환경차 보조금이라는 제도를 도입하며 전기차를 구매하는 국민에게 지원한 보조금만 누적 1조원이 넘는다. 이를 통해 보급사업 12년이 지난 지금 국내 전기차 대수는 60만대를 넘어섰다. 도입 초기에 이슈가 됐었던 충전 인프라와 같은 문제를 많이 해결해 사회적 수용성도 향상됐고 산업이 성숙기로 접어들었다다 판단한 후 보조금을 줄이고 화재와 같은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배터리 인증제' 등을 시행하는 등 허용보다는 제한 위주로 전환하고 있는 산업의 현황 또한 '허용과 제한 교차활용'의 또 하나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취지를 정부에서 공감하고 세계에서 선도적으로 법령을 마련했다고해도 아직 넘어야할 과제는 여전히 많다. 본법령에 따르면 레벨4 자율차를 살 수 있는 구매자는 단 3곳으로 정부기관과 여객 운수사업자·화물 운수사업자이다. 그렇다면 3곳의 고객이 아직은 대량생산 단계로 가지 못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하고 일반 차량의 2배 이상 가격인 레벨4 자율차를 얼마나 사려고 할것인가? 심지어 레벨4 자율주행차는 정해진 구간안에서만 자율주행이 되기 때문에, 가격은 2배 이상임에도 운행지역은 제한된다면, 시장 초기에는 정말 극소수 수요밖에 없을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새로 등장할 자율주행차 제조사는 현행 제도의 틀 안에서는 '자동차 제조사'로 분류되기 때문에 책임과 의무는 막대하게 증가한다. 우리나라에 자동차 제조사가 탄생한 것은 1967년 현대자동차를 끝으로 60년이다. 자동차를 제조하는 회사의 탄생도 결코 쉽지않아 그렇게 오래됐는데, 자율주행차를 제조하는 회사의 탄생을 기존 제도 틀 안에 둔다면 이는 다시 요원해질 수 밖에 없음이 명확하다.
따라서 어렵게 세계에서 3번째로 제도를 만든 만큼 이제 이를 활성화하기 위한 장려정책이 병행돼야 할 때다. 세계 첫 번째로 2022년 레벨4 자율주행차 B2B 법규를 제정한 독일은 제정 2년 넘도록 단 하나의 업체도 인증을 받지 못해 유명무실한 법규가 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거울 삼아야한다. 탄소배출을 줄인다는 장점에 착안해 보급을 장려했던 전기차처럼 대중교통 기사의 고령화와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교통소외지역과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성을 증진할 수 있는 자율주행차의 보급장려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그래야 경쟁국가 대비 시장도 작고 자본도 적은 한국이 글로벌 경쟁 시장에서 주먹 한번이라도 내질러볼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마차에서 내연기관차로 전환된 모빌리티 패러다임 변화 이후 다시 100년만에 모빌리티 전환이라는 기회가 왔다. 60년 전 현대차의 등장처럼 새로운 거대기업 역사가 시작될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신산업 업계의 한 사람으로써 AI 시대의 첫 포문을 열 것이라 기대되는 자율주행차가 이러한 국가도약의 선두주자가 될 혁신의 아이콘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한지형 오토노머스에이투지 대표 hjh@autoa2z.co.kr
〈필자〉한지형 대표는 한양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현대자동차 연구소에 입사했다. 현대차 미국 라스베이거스 최초 주·야간 자율주행, 서울·평창 자율주행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이후 오토노머스에이투지를 창업해 5년 만에 국내 1위, 세계 13위 독보적 성과를 창출했다. 현재 4차산업혁명위원회, 한국교통안전공단,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등에서도 모빌리티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모빌리티 산업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