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대해 표현할 때 흔히 쓰는 말 중에 ‘심금을 울린다’가 있다.
여기서 ‘심금’은 ‘마음 심(心)’과 ‘거문고 금(琴)’이 결합한 단어로, 이를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마음의 거문고를 울린다’라는 뜻이 된다.
참 예쁘고 재미있는 표현이다.
그리고 최근 가요계에 이 ‘심금을 울린다’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게 만드는 가수가 등장했다. 일본 국적의 가수 우타고코로 리에는 빼어난 감성과 가창력으로 국적과 언어를 뛰어넘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선물하고 있다.
한 가지 또 재미있는 점은 우타고코로 리에(歌心りえ)의 이름에는 ‘노래 가(歌)’와 ‘마음 심(心)’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여러모로 ‘심금을 울린다’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가수다.
1995년 그룹 Let it go(렛 잇 고)로 데뷔해 가수 생활 30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는 베테랑 가수 우타고코로 리에는 21일 한국어 싱글 ‘제비꽃’을 발매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과거 ‘겨울연가’나 ‘호텔리어’, ‘내 머릿속 지우개’ 등의 OST를 일본어로 커버해 발표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쌓은 적은 있었으나, 한국어 싱글의 발매는 물론 한국을 방문한 것도 ‘한일가왕전’을 계기로 온 것이 처음이라는 그에게 30년 만에 새로 쓰는 출사표를 들어보았다.
일단 우타고코로 리에의 첫 한국 싱글에서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제비꽃’ 그 자체다.
‘제비꽃’은 ‘언더그라운드 포크의 대부’로 불리며 1970, 80년대에 활약한 故 조동진이 1985년 발표한 곡으로, 일본 출신의 우타고코로 리에에게는 아무래도 낯선 곡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우타 고코로 리에도 ‘제비꽃’을 두고 “평소에 비해 ‘도전’의 의미가 큰 곡”이라고 평했다.
우타고코로 리에는 “‘제비꽃’은 평소 불렀던 곡과 비교해서 나에게 도전의 의미가 매우 크다. 멜로디의 기복이 많지 않아서 ‘어떻게 부르면 좋을까’, ‘이 곡은 어떤 곡일까’를 매우 고민했다. 나름의 어레인지가 많이 들어갔다”라고 밝혔다.
곡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원곡자에 관한 관심으로도 이어졌다. 그 곡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알아야 완벽하게 공감하고 소화할 수 있다는 우타고코로 리에의 소신 덕분이다.
우타고코로 리에는 “조동진에 대해서는 이번 곡을 통해 알게 됐다. 그에 대한 뉴스 등을 찾아보았고, ‘제비꽃’이 사람의 인생, 삶이라는 큰 테마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돼 공감을 했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제비꽃’의 가사를 읽었을 때, 주인공이 살아온 길, 그 위의 경험, 꿈, 사랑, 슬픔, 좌절 등의 감정이 시(詩)처럼 떠올랐다. 이게 답인지 모르겠지만, 시대 배경과 관계가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표면적 가사는 소녀가 병을 앓는 것이지만, 그 시대가 좋지 않아서 그런 가사가 나왔다고 생각했다. 젊은이들이 마음대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 노래에 담겨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라고 분석해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 같은 우타고코로 리에의 음악에 대한 진정성은 그의 노래에 고스란히 담겨 나온다.
감성이 풍부한 음악을 유독 잘한다는 말에 우타고코로 리에는 “그렇다. 말한 대로일지 모르겠다. 데뷔 당시에는 8비트의 밝은 스타일 팝을 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미디움 발라드나, 감정이 들어간 곡, 가사가 중요한 노래가 내 마음에도 든다. 그것이 내 무기가 됐다”라며 웃었다.
지금은 국적과 언어를 넘어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가수로 자리매김한 우타고코로 리에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에는 긴 무명 기간과 여러 가지 고난을 극복해야 했다.
무명 기간이 길었던 이유를 묻자 “이유가 뭘까? 나도 잘 모르겠다”라며 웃은 우타고코로 리에는 “일본에서 1995년에 데뷔했다. 사실 그때 데뷔한 것도 행운이었다. 그 시기에 유명 음료 CF 송을 불렀는데, 3개월간 방영이 예정됐던 게 1개월로 줄었다. 운명의 장난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사실 우타고코로 리에의 가수 인생에 더 큰 좌절을 안긴 것은 무명 기간보다 목소리의 건강이었다.
우타고코로 리에는 “몇 년 전에 성대결절이 왔다. 두 번째였다.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2년 정도 노래를 하지 못하게 되면서 남편이 운영하는 라이브 카페에서 서빙 등의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면서 라이브를 하는 다른 뮤지션을 보면서 ‘이렇게 멋진 분들이 있는데 내가 노래할 필요가 있나?’, ‘나에게 노래할 자격이 없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사람 앞에서 노래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 컸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자칫 가수 인생이 끝나버릴 위기를 경험한 우타고코로 리에였으나, 좌절의 수렁에서 그를 구해 준 것은 결국 가족이었다.
우타고코로 리에는 “그런 이야기를 남편에게 털어놓으니, 남편이 ‘그래도 네 안에는 음악이 있잖아?’라고 하더라. 그 한마디에 마음을 다시 다잡았다. 나 자신과 음악을 돌아보고 다시 노래를 할 수 있었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우타고코로 리에가 재기의 발판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트로트 걸즈 재팬’이다. 결과적으로 준우승을 차지하며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게 한 프로그램이지만, 당초 우타고코로 리에는 ‘트로트 걸즈 재팬’에 출연하는 것을 굉장히 주저했다고 털어놓았다.
우타고코로 리에는 “이전에 있던 소속사에서 이런 오디션이 있다고 알려줬다. 그런데 나는 엔카를 부르는 가수가 아니었고, 오디션은 젊은 친구들이 나가는 거로 생각해서 처음엔 굉장히 주저했다. ‘50대인 내가 나갈 수 있나? 나이가 괜찮나?’라고 며칠간 고민을 했다. 그러다 결국 참가를 결심했다”라고 밝혔다.
그렇게 긴 고민 끝에 출연을 결정한 이후의 행보는 익히 알려진 대로다. ‘트로트 걸즈 재팬’에서 준우승의 영예를 거머쥔 것은 물론 MBN ‘한일가왕전’과 ‘한일톱텐쇼’에도 출연하며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큰 사랑을 받는 가수로 거듭났다.
우타고코로 리에는 “‘트로트 걸즈 재팬’에서 그룹 대전 때 한번 탈락했다가 패자 부활전에서 다시 올라갔다. 그때 부른 게 ‘피에로의 소네트’였다. 사실 준우승까지 할 거라고 생각을 못 했다. 출연자들의 성장이 잠시 주춤해지는 시기가 있었는데, 갑자기 확 치고 올라오더라. 그래서 질 것 같다고 긴장했었다”라며 긴장됐던 순간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결국 그 모든 순간을 이겨낸 우타고코로 리에는 가수 인생 29년 만에 가장 화려한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우타고코로 리에는 “내가 한국 음악을 리메이크해서 한국에서 노래할 거라고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나의 음악 인생에서 한국에서 이렇게 인기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말도 다른데 신기하고, 노래로 무언가를 전했다는 것이 정말 기쁘다. 친언니와 음악 활동을 같이 시작했는데, 언니도 굉장히 기뻐하고 있다. 같이 데뷔해 여러 가지 힘든 시기를 보내서, 언니가 더 기뻐하고 여기저기 많이 알리고 있다”라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긴 터널을 지나 이제는 당당히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가수로 우뚝 선 우타고코로 리에는 앞으로도 ‘노래하는 사람’으로 남고자 했다.
우타고코로 리에는 “물론 개인적인 목표와 꿈은 있지만, 어쨌든 지금은 노래를 하고 싶다. 지금도 그렇고, 할머니가 돼서도 내 길을 걸으며 살고 싶다”라고 밝혔다.
우타고코로 리에는 ‘노래로 무언가를 전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그 ‘무언가’는 즐거움, 기쁨, 공감, 감동 등 여러 가지가 될 수 있겠지만, 우타고코로 리에가 생각하는 그것은 조금 달랐다.
우타고코로 리에는 “내 무대 댓글 중에 ‘노래에 성격이 담긴 것 같다’가 기억에 남는다. 내가 그 정도로 선인(善人)은 아니지만, 그래도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이 목소리에 담겨 있고 그것이 전달됐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즉, ‘인생 그 자체’를 노래로 전달한다는 뜻. 역시 ‘심금을 울릴 수밖에 없는’ 가수다.
전자신문인터넷 최현정 기자 (laugardag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