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도체 변화, 위기와 기회는 같이 온다

반도체 산업 구조가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기술 발전에 의한 것이나 특히 인공지능(AI)으로 더 가속도가 붙는 모습이다. 컴퓨팅의 핵심 역할을 하던 중앙처리장치(CPU)는 어느덧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고, 표준화된 규격에 대량으로 생산· 공급된 메모리는 이제 고객이 필요로 하는 성능에 맞게 '맞춤형'으로 변모하고 있다.

지난주 전자신문 주최로 열린 '반도체 한계를 넘다' 콘퍼런스에 연사로 나선 삼성전자 김현우 기술기획팀장(부사장)은 “기존에는 적은 비용으로 반도체 집적도를 높이는 데 연구개발이 집중됐다면 AI 시대에서는 성능과 전력효율이 더 중요해졌다”면서 가격이 비싸더라도 시장 요구에 대응하는 고성능·고부가 반도체 개발을 우선하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과거엔 없던 융합도 벌어지고 있다. 서로 만날 일 없을 것 같던 파운드리와 메모리 업체 간 협력이 그 예다. SK하이닉스는 2026년 양산할 고대역폭메모리 HBM4를 TSMC와 공조해 만들기로 했다. 성능과 전력효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HBM에 시스템 반도체를 추가하는데, 파운드리 쪽 로직 기술이 필요해서다.

여기에 GPU는 메모리와 더 가까이 하나의 반도체처럼 결합(패키징)되고 있다.

SK하이닉스 패키징 기술 개발을 총괄하는 문기일 부사장은 '반도체 한계를 넘다' 콘퍼런스에서 “복합적 기능을 가진 반도체를 하나의 시스템에 넣어 가장 최적화된 상태로 운영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며 “칩렛 등 서로 다른 반도체를 연결해 성능을 끌어올리는 이종 결합 패키징이 앞으로 10년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16일과 17일 열린 '반도체 한계를 넘다' 콘퍼런스 참석자들이 발표를 집중해 듣고 있다. 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지난 16일과 17일 열린 '반도체 한계를 넘다' 콘퍼런스 참석자들이 발표를 집중해 듣고 있다. 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최근 한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우려가 많다.

맞춤형 반도체가 늘어나고, 시스템 반도체와 패키징 역할이 중요해지는데 모두 한국이 취약한 분야라는 것이다. 근거가 있는, 합리적 분석과 지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우인 것도 사실이다. AI 시대 대표 상품이 된 HBM의 전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건 여전히 한국 기업이다.

또 GPU와 메모리를 2.5차원으로 연결하거나 CPU 위에 D램을 쌓는 이종 패키징도 메모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산업 구조의 변화는 위기도 될 수 있지만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대비다. 준비돼 있어야 기회도 잡는다. 어떻게 파고를 넘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