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플러스]대학중심이 아닌 대학주도의 기후위기 대응 가능성 모색

김상준 이화여자대학교 창업지원단장/경영대학 부교수(오른쪽) 최용상 이화여자대학교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레인버드지오 대표이사
김상준 이화여자대학교 창업지원단장/경영대학 부교수(오른쪽) 최용상 이화여자대학교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레인버드지오 대표이사

그동안 수많은 기후위기 완화를 추구하는 스타트업이 나타났지만, 여전히 지구온난화는 진행 중이고 기후변화의 위기는 여전히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스탠퍼드 지속가능성 엑셀러레이터팀 단장 Yi Cui 교수)

기후변화에 대한 정말 다양한 해법들이 주장되고 논의되며 실행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은 오랜 기간 제기되어 왔고, 또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전방위적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지구의 온도는 올라가고 있고, 이로 인한 기후변화는 더욱 가시화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위기의식은 피부 깊숙한 곳까지 퍼져있다.

이러한 딜레마적 문제의식은 비단 기후위기에서만 나타난 것은 아니다. 20여 년 전 음악의 불법다운로드에 대한 사회적 갈등이 고조되던 시기에 플랫폼을 통한 음원 단위의 거래를 가능하게 한 최초의 음원 거래 디지털 플랫폼 비즈니스는 불법 음원 다운로드 문제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음원 시장이라는 새로운 질서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콘텐츠 거래를 추구하는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이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면서 우리의 삶의 방식 또한 달라지게 되었다.

시장은 단순히 재화와 서비스가 거래되고 교환되는 곳이 아니다. 경제활동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결정되고 변화되며, 이를 통해 세상이 새롭게 구성되고 진화한다. 환경이 변화하더라도 인간은 이에 대해 인간이 스스로 구성하고 변화시키며 환경 변화에 대응하게 되는데, 이때 이러한 거시적 변화를 만들어 내는 핵심적인 메커니즘 중의 하나가 시장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어쩌면 기후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시장은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하여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 중 하나가 기후테크 창업이라고 볼 수 있다. 기후테크 창업은 기후변화로 나타나는 삶의 불편함을 기술 기반의 비즈니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기후테크는 특히,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탄소배출을 줄이고자 하는 다양한 환경문제 해결적 접근(기후완화)에서 출발하여, 이미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를 잘 이해하고 그 변화의 방향성을 잘 예측하여 인간의 삶을 변화된 환경에 적응케 하는 인간 행동 변화적 접근(기후 적응)을 모두 포함한다. 따라서기후변화로 나타나는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를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기후테크 창업의 핵심인 것이다.

이는 주로 민간 주도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혁신창업생태계를 통해 혁신적인 기술이 개발되고 이것이 비즈니스의 형식으로 시장에 자리 잡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흐름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혁신창업생태계의 기조하에, 정부는 다양한 창업지원 정책을 실시하고, 자본 시장에서는 혁신적인 비즈니스에 재원을 투자함으로써 새로운 비즈니스가 생존의 모멘텀을 만들도록 도와준다. 정부의 창업지원 정책은 실제로 창업 활성화를 이루어내었지만, '활동'중심의 창업생태계를 만들어 내었다.

물론 정부 지원과제의 도움을 받아 창업이 활성화되고, 그 결과물인 창업기업들을 통해 실질적인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정부 지원과제 중심의 창업은 창업의 초기과정에서 창업기업이 구성되는 활동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창업기업에 시장 패러다임을 배태시키기 위한 또 다른 노력이 요구되고, 그 과정에서 성장 없는 창업기업이 만들어질 개연성을 만들어 내었다. 이는 정부 지원 중심의 혁신창업생태계는 창업 활동을 활성화하는 데 그 목적과 역할이 있는 것이지 더 나아가 거시적 사회변화가 만들어 내기에 제한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모험자본시장에서의 혁신창업생태계에의 노력은 실제 창업기업들이 스케일업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을 제공해주었고, 창업기업들의 성장을 도와주었다. 하지만, 자본시장의 속성상 중장기 사회변화보다는 단기 성과향상에 초점을 맞추기에, 모험자본시장 주도의 혁신창업생태계는 벤처기업에 단기성과주의가 주입될 개연성이 있다. 이는 모험자본을 통한 창업기업의 성장이 가시화될 수 있겠으나, 그 성장이 단기성장을 진작하는 성장, 혹은 성장의 과정을 가속화하는 성장이지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 내는 성장을 지향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무릇, 기후위기는 단기적인 조치로 이루어지는 단편적인 문제가 아니고, 우리의 삶을, 우리가 환경을 대하는 방식을, 이로써 인간과 환경이 공진화하는 방식을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할 것이기에, 현재의 혁신 주체와 더불어, 또 다른 혁신창업생태계의 주도적 주체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아니, 창업활동도, 단기성과도, 기업성장 그 자체가 아닌, 혁신창업생태계에서 거시적 사회적 변화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주도적으로 방향을 이끌어 내는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주체가 필요하다.

[에듀플러스]대학중심이 아닌 대학주도의 기후위기 대응 가능성 모색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전 세계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대학의 역할이 재조명되고 있다. 대학은 과거 교육 중심에서, 연구 중심으로, 현재는 기업가적 속성 중심의 사회변화 주체로 그 역할이 진화되어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혁신창업생태계는 대학주도라기보다는 대학중심이었다. 대학은 생태계의 중간에서 인적자원을 제공하는 역할을 중심으로 다양한 자원을 집적하여 합목적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었고, 또 그 과정에서 다양한 생태계 주체들의 다양한 관점과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하였다.

즉, 지금까지의 대학은 혁신창업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도구적 지위에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중심적 도구성은 생태계 자체가 가야 할 길을 명확히 하고 진성(true north)을 향한 전략적 방향성을 만들어 내는 데에는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게 하였다. 대학 내외에서 정부지원금에 의존하여 창업이 시도되고, 모험자본에 의존하여 대학발 창업기업의 성장이 이루어질 뿐, 대학이 주도하는 창업기업의 성장과 전략적 생태계 진화는 아직은 그 영향력이 미비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만약 대학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혁신창업생태계에서의 리더십을 가지게 된다면, 그때는 무엇을 지향해야 할 것인가? 전 세계적으로 혁신창업생태계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만들어낸 실리콘밸리의 중심에서 스탠퍼드 대학은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대학이 주도하는 새로운 생태계를 구성하였다.

스탠퍼드 대학은 대학의 새로운 리더십을 위해서 기후변화와 관련한 학제 간 프로그램을 기획, 설계, 운영하는 중추적 주체를 “지속가능성 대학”(John Doerr School of Sustainability)으로 새롭게 수립하였다. 스탠퍼드의 지속가능성 대학은 6가지 분야에서의 기후위기 대응 목표를 세우고 데이터 분석학 및 AI, 센싱 기술을 위시한 지구시스템 분석기술과 생태학, 지리학, 생물학을 기반으로 하는 지속가능성 구현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실제 창업으로 연계하여 시장을 통해 확산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지속가능성 엑셀러레이터가 집중하고 있는 기후위기 분야 및 목표는 다음과 같다: (1) 2050년까지 탄소배출 넷제로 실현, (2) 2035년까지 산업계 온실가스 감축, (3) 2035년까지 10억 인구의 삶 개선(기후적응), (4) 2035년까지 전 세계에 건강한 식단 제공하면서 온실가스 발생 감축, (5) 재생에너지 및 그리드 향상을 통해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 지향, (6)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소화하면서 깨끗한 물을 확보, 복원, 지속가능하게 관리하여 모두가 평등하게 수자원에 접근.

스탠퍼드의 지속가능성 대학이 지향하는 목표는 지엽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의미있는 영향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점에서 담대하면서도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혁신창업생태계에 있어서의 대학의 리더십을 구축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스탠퍼드의 지속가능성 대학은 대학 구성원이 전 지구적 임팩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개발의 제안을 하고 변화를 주도하게 한다. 특히, 기술개발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된 기술이 실제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그 모습이 공공영역에서의 정책이든 민간영역에서의 창업이든-실제 사회에 출시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대학 내의 자원만이 아니라 스탠퍼드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자원(정책, 법률, 자본, 판로 등)을 모두 집적하고 활용한다. 이러한 “개발과 출시(Develop and Launch)” 전략은 스탠퍼드의 지속가능성 대학이 지향하는 스케일이 실제의 사회적 변화(임팩트)로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 대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행동지침을 제공하게 된다.

특히, 스탠퍼드 지속가능성 대학이 추구하는 교원 중심의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혁신과정은 국내에서의 창업 생태계와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혁신을 주도하는 것은 전문적 기술개발 역량을 가지고 있는 교원에서 출발한다. 교원들은 자신이 인지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기술 기반의 해결안을 제안하고 이를 학교 차원에서 검토하고 논의하고 발전시켜 실질적인 기술로 개발하는 과정을 거치게 한다.

이러한 가설 기반의 기술개발 과정은 학제간 전문성에 의해 보완되고 확장되면서 실질적인 시장에서의 임팩트를 가시화하게 도와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대학을 둘러싸고 다양한 전문적 역량이 집적되어 유기적인 교육 및 실천 체계를 이루어 낸다. 여기서, 실리콘 밸리가 뉴잉글랜드 지역(Route 128)의 산업클러스터와는 구분되어 실질적인 혁신을 만들어 낸 문화적 고유성이 보여지기도 한다.

“다양한 주체들 간 적극적이고 긴밀한 협업과정은 스탠퍼드 문화라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스탠퍼드가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지속가능성 대학에서의 프로그램들 역시 이질적이지 않습니다” - David Weinsten, 스탠퍼드 지속가능성 엑셀러레이터팀 대외 교육 및 활성화 부단장

이는 어쩌면 스탠퍼드 대학이기에 가능할지도 모른다. 스탠퍼드 대학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도 이러한 새로운 생태계의 리더 형성의 시도가 포착된다. 서울대, 카이스트, 연세대, 그리고 이화여대는 아산 유니버시티 사업을 통해 아산나눔재단과의 긴밀한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임팩트 중심의 기후테크 창업 생태계를 재구성하고 있다.

비영리기관-대학 간의 협업을 통해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창업기업을 발굴하고 육성하고자 하는 사업인 아산 유니버시티에서 대학주도의 생태계 리더십의 가능성이 보이는 것은, 스탠퍼드의 지속가능성 대학이 지향하는 것과 같이 기술을 중심으로 실질적인 임팩트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단기중심의 성과 혹은 창업활동 그 자체에 초점을 두는 것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학이 만들어낸 기술을 시장을 통해서 임팩트를 창출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향후 대학주도의 기후변화 대응 과정이 기대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기후위기는 국가 경계를, 사회 구분을, 인간 특성의 차이를 막론한다. 국가, 문화, 사회, 개인에 동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체계적인 임팩트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대학이 주도하는 혁신창업생태계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제공할 것이다.

김상준(이화여자대학교 창업지원단장/경영대학 부교수)

최용상(이화여자대학교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레인버드지오 대표이사)

※본 기고문은 아산나눔재단이 운영하는 기후테크 창업가 육성 사업인 '아산 유니버시티(Asan UniverCT, Climate Tech)'를 소개하고, 해당 사업과 협약을 맺은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카이스트 등 4개 대학이 8월 다녀온 글로벌 탐방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공유하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