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계열사 자율경영 8년…내부서 터진 '컨트롤타워 부활' 요구

“삼성은 위기 때마다 항상 숨겨놓은 신기술이나 성장 전략에 대한 카드를 꺼내 업계를 놀라게 했었습니다. 이번에 반도체 사업 부진에 대한 사과문을 보니, 그동안 준비해놓은 카드가 정말 없다는 의미 같았습니다. 진짜 위기라는게 오히려 실감 났습니다.”

전자 업계를 30년 이상 지켜봐 온 한 전문가의 평가다. '반도체 사업 성공에 너무 오래 취해있었다'는 지적도 곳곳에서 거론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8일 오후(현지시간) 싱가포르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싱가포르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해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8일 오후(현지시간) 싱가포르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싱가포르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해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 부진을 이유로 5월 전영현 미래사업기획단장 부회장을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으로 위촉하는 수시 인사를 단행했다. 이후 대대적 재정비가 이뤄지고 있지만 이미 경쟁사에 뒤처진 초고난도 반도체 기술 개발을 단기에 극복하기는 어려운 모양새다.

'준비의 삼성' ,'기술의 삼성'이라 불려온 삼성전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 경쟁에서 뒤처지며 '위기의 삼성'이 됐다. 삼성 안팎에선 일제히 '컨트롤타워 부활'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전례없는 위기 진앙지가 반도체이지만, 단순히 반도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과거 삼성 미래전략실은 각 계열사 사업에서 발생하는 핵심 정보를 폭넓게 취합해 전략적 의사결정과 실행을 주도하는 핵심 조직이었다. 전문경영인은 경영에 집중하고 그룹 차원의 대규모 투자 판단 등 주요 의사결정과 이에 따른 책임까지 지는 그룹의 핵심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미래전략실 대관업무가 정경유착 의혹을 받는 등 정치권 중심으로 그룹 쇄신 필요가 제기됐다. 당시 이재용 부회장이 2017년 2월 쇄신계획 일환으로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해체를 선언했다.

삼성은 계열사 자율 경영체제로 전환한 지 8년여를 앞뒀지만 그 어느 때보다 컨트롤타워 부활 목소리가 내부에서 거세게 터져나온다. 현재 태스크포스(TF) 형태인 '사업지원TF'를 정식 조직으로 격상해 각 계열사의 과감한 투자와 실행을 그룹 차원에서 책임지고 지원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반도체·경영 전문가들도 “최근 삼성 안팎에서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이 책임을 회피하며 사업한다는 지적이 거센데, 결국 이는 경영 구조에서 비롯한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삼성 관계자는 “때로는 계열사 CEO 판단도 바꿔놓을 정도로 강력한 정보력과 판단·실행력을 갖춘 게 미래전략실이었다”며 “현 사업지원TF는 특성상 책임도 없고 권한도 없어 시간만 끌다보니 내부서 냉소적 시선을 받게된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연말 실시할 인사와 조직개편에 주목하고 있다. 실적 부진과 사업 책임 문제로 대대적 인사 개편이 예상되지만 지난 수년 간 소위 '인물'을 길러내지 못해 마땅한 혁신 카드가 없다는 내부 비판도 크다.

삼성 관계자는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은 삼성 책임만 회피한 게 아니라 지나친 보신주의로 뒤를 이을 역량있는 후배를 양성하지도 않았다”며 “삼성의 미래가 암담한 것은 당장 눈앞의 손실이 아니라 각 사업 전반의 불투명한 차기 리더십”이라고 꼬집었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