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기에 들어서면서 기업들이 속속 은행 차입금을 상환하고 회사채를 발행해 직접 자금 조달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달에만 13조원이 넘는 자금이 회사채를 통해 기업에 유입됐다.
27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신규 발행된 회사채 규모는 지난 25일까지 총 13조4034억원에 이른다. 25일에만 한진이 610억원, 롯데건설이 1680억원, SK실트론이 1000억원, HD현대도 2970억원 규모 회사채를 신규 발행했다. 이후로도 현대해상, 에쓰오일, 하나증권, KB금융 등이 연이어 신규 회사채 발행을 대기 중이다. 금리 인하를 결정한 11일 이후에만 9조5227억원 회사채가 추가로 발행됐다.
회사채 발행 시장은 이미 뜨겁다. 기관투자자이 우량 기업 회사채에 관심을 보이면서 수요예측부터 열기를 띠고 있다. 실제 당초 회사채 발행을 통해 600억원 자금 조달을 계획했던 SK실트론은 투자자 수요예측이 잇따르자 발행 규모를 1000억원까지 늘렸다. HD현대는 당초 1500억원 조달 목표가 2970억원으로 2배 가까이 뛰었다. 롯데건설은 500억원 규모 3년물에서는 미매각이 발생했지만, 2년물은 기대를 채웠다.
이번에 회사채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은 전량 기존 채무상환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 금리 인하기 이전 금융권에서 조달한 차입금을 상환하고 조달 비용이 보다 유리한 회사채로 갈아타기 위한 목적이다. 특히 HD현대는 이번 수요예측 흥행으로 기존 차입금을 모두 상환한 것은 물론 270억원에 이르는 추가 운영자금까지 확보했다.
금융사도 마찬가지다. 이번 금리 인하를 자본 조달의 적기로 삼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4000억원 규모로 공모채를 발행했다. 이번 공모채 이자율은 3.428~3.462%으로 정해졌다. 조달한 자금은 전액 이달부터 순차로 만기가 돌아오는 기업어음(CP) 상환을 위해 쓰인다. CP 이자율 4.88~4.93% 대비 이자율이 크게 낮아지게 됐다.
당분간 금리 인하에 따라 회사채 시장의 수요예측 강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표적인 공모채 우량 매물로 꼽히는 한국전력이 총 7000억원 규모 채권을 발행했음에도 크레딧 시장에서는 무난하게 물량이 소화됐다. 최근 증시 부진 등으로 인해 증권사 리테일 창구를 중심으로 개인투자자 채권 매수세가 크게 늘어나면서 투자업계에서는 물량 소화에 대한 부담도 크게 덜어진 분위기다.
발행기업 회사채 발행을 통한 상환 수요도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올해 상반기 대한상의가 국내 4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기준 금리 인하로 인한 이자 경감시 가장 우선적으로 취할 조치로 65%가 부채상환 등 재무구조 건전화를 꼽았다. 탄탄한 신용 등급을 기반으로 발행시장에서 직접 자금 조달을 수행할 수 있는 기업의 회사채 발행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명실 iM증권 연구원은 “금리인하와 WGBI 편입 등 채권시장에 뜻밖의 호재들이 지속된 가운데 불확실성 해소와 더불어 미 대선과 연말이 머지않아 그 전에 자금조달을 마치려는 발행사 니즈가 강했기 때문”이라면서 “본격적인 금리인하 사이클이 시작되면서 크레딧 시장이 예년보다 빨리 강세로 돌아선 느낌”이라고 말했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