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과학기술인의 숙원이던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실이 올해 1월 전격 설치됐다. 초대 수석에는 과학기술정책 전문가인 박상욱 서울대 교수가 발탁됐다.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논란으로 과학기술 홀대론까지 불거지던 상황에서 투입된 구원투수다. 박 수석은 내년도 R&D 예산을 복구하는 한편, 윤 대통령의 기조였던 나눠먹기식 R&D 구조도 개혁하는 성과를 냈다. 2025년도 R&D 예산이 마무리되자 전세계를 강타한 인공지능(AI) 진흥을 위해 또다시 두 팔을 걷었다.
박 수석을 서울 중구 한국형ARPA-H프로젝트 추진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박 수석과의 일문일답.
-대통령직속 인공지능(AI)위원회가 출범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웃음) 우리가 내세우는 AI위원회 특징은 기술전문가만의 조직이 아닌, 법과 제도 등 여러 전문가가 어우러진 조직이다. 특히 민간기업이 많이 들어왔다. 분과위원회가 런칭되면 더 들어올 예정이다. 정리하자면, 민관이 원팀이 돼 AI의 미래를 그려가고 만들어가는 위원회다. 자문만 하거나 기획만 하는 위원회가 아니다. 우리가 선택한 AI 미래를 우리가 직접 만드는 민관이 함께 만드는 위원회다.
-AI는 미국이 가장 앞서있다.
▲지금은 미국 주도의 생성형 AI와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시대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미국에는 빅테크들이 있고, 이 빅테크들은 또 어마어마한 금융 자본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를 통해 거대언어모형(LLM)이나 생성형 AI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인프라 측면에서는 우리하고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가 LLM을 포기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도 나라가 사이즈가 있고 산업이 있고 특히 정보통신(IT) 산업이 굉장히 발달해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가장 잘할 수 있는게 무엇이냐를 고민해야 한다. 미국이 펀더멘탈 모델 위주로 기술 진보를 견인한다면 우리는 그것에 애플리케이션과 하드웨어에서 부가가치를 확보해야 한다. 저전력 신경망처리장치(NPU)와 온디바이스 AI, 소형 거대언어모델(sLLM) 등 여러 옵션이 있다. 우리가 미국 빅테크와 직접 경쟁할 것이 아닌 이상은 미국이 기술을 혁신하고 우리는 미국과 함께 가면서 디바이스에 주력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하드웨어 경쟁력이 세계 최고다. 아무리 좋은 AI 모형, 소프트웨어가 있더라도 손에 쥘 수 있는 다바이스가 있어야 한다. 스마트폰 기반이건, AR, VR, XR 디바이스건, 대한민국이 그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제조업 강국의 장점을 AI에서도 활용해야 한다는 뜻인가.
▲대한민국은 반도체와 배터리, 바이오를 모두 제조할 수 있다. 독일과 일본 등 전통적인 제조강국도 이를 다 하지는 못한다. 반도체를 찍어내는 것도 한국보다 잘하는 나라는 없다. 파운드리는 TSMC가 있는 대만이 있지만, 우리도 메모리 반도체를 통해 축적한 공정 기술이 있고 추격자 입장이지만, TSMC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그런 체계에 대해 많은 빅테크는 공급선 다변화를 생각할 것이다. 리스크 헤징을 해야하니까. 지정학적으로도 TSMC가 불안 요소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앞으로 파운드리 쪽에서도 굉장히 성장할 여력이 있다. 그렇게 보고 있다. AI 역시 현재 GPU나 고대역메모리(HBM) 위주에서 다음 세대에는 특화된 용도 위주 원칩 AI로 가게 된다면 굉장히 다변화된 다양한 칩이 나오는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메모리가 베이스인 프로세싱인메모리(PIM)과 같은 칩도 분명히 기회가 있을 것이다. 삼성전자 역시 지금 부진하다고 이런저런 말이 많은데, 너무 심각하게 본다거나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다면 AI위원회는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는가.
▲국가 AI전략 방향은 나왔다. 다만 방안은 아직 안 나왔다. AI위원회가 본격 가동되면 이를 구체화해서 방안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할 것이다. 지원단도 설치된다. 지원단장은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실 인공지능(AI)디지털비서관이 겸임한다. 2국 4팀으로 구성된다. 1개국은 전략을, 1개국은 지원 역할을 맡게 된다. 사무실 공사를 끝내면 연내에 출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과학기술수석실이 직접 챙기고 부처 또한 많이 참여한다.
-AI위원회에 다양한 부처 주요 인원이 포함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실이 중심이긴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 역할도 굉장히 중요하다. 기존 전통산업, AI와 연관되지 않은 산업도 AI를 접목해 생산성과 부가가치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산업AX에 힘을 많이 쏟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마찬가지다. 바이오는 AI랑 연결돼야 한다. 올해 노벨화학상이 AI 바이오에서 나왔다. AI로 단백질 구조를 분석하고 예측하고 설계까지 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또 외교부도 아주 중요한 부처다. 국제 AI 규범과 거버넌스, 안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AI 위원회에 왕윤종 국가안보실 3차장이 포함된 것도 'AI=안보'라는 인식 때문이다.
-'AI=안보'라 표현하셨다. AI역시 한미동맹 차원에서 바라봐야 하나.
▲며칠 전에 미국에서 AI를 핵무기 같은 국가 전략자산으로 간주하는 '국가 안보 각서(NSM)'를 발표했다. 우리 정부도 AI를 안보 차원에서 접근해 왔다. 이미 일찌감치 국가안보실 3차장실과 AI디지털비서관실이 밀접하게 협업하면서 미국과 보조를 맞춰서 AI를 안보 차원에서 다루고 있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NSM은 간단하게 AI와 관련해 '우리가 다 하겠다'는 선언이다. AI를 가진 나라와 못 가진 나라가 이제 핵무기를 가진 나라, 못 가진 나라 이상의 격차가 난다라고 안보 차원에서 강조했다. 우리는 미국과 혈맹관계다. 군사뿐 아니라 과학기술 동맹이기도 하다. AI 역시 동맹이다.
-중국도 AI 역량을 갖추고 있다. AI 부문에서도 중국과 대결 구도가 되는가.
▲대결 구도라는 말은 조금 세다. 하지만 기술냉전이라고 하는 말이 등장한 지도 3~4년 됐다. 최근에는 기술냉전을 넘어 아예 다시 신냉전인 것 같다. 북한이 러시아를 돕기 위해 파병하고, 러시아, 중국, 북한이 밀접하게 지내고 있다. AI에서 중국의 힘이 센 것은 부인할 수가 없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AI는 아직까진 굉장히 노동 집약적인 산업이다. 학습, 코딩, 오류 취합 등 데이터 양이 많아야 AI 품질이 높아진다. 그런 면에서 중국은 개인정보에 대한 보호나 인권에 대한 존중이라고 하는 면에서 서방, 자유진영국가에 비해 리스크를 최소한으로 가져가며 AI 기술을 발전시켜왔다. 또 AI 기술은 사이클이 아주 짧다. 기술변화 속도가 빠르기에 물량 투입이 많은 기술을 그만큼 빨리 진보시킬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AI 기술을 활용하는 사용처 역시 중국은 서방의, 자유진영국가의 윤리적 기준과 맞지 않는다. 국가 통제에 주로 활용하기도 하고. 정리하자면, 학습 단계, 기술개발 단계부터 이미 윤리적 기준이 우리와는 다르다. 중국의 AI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선진국가에서 쓸 수 없다. 결국 AI 산업이라는 측면에서 세계는 조각날 수밖에 없고, 우리는 미국 쪽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 기업 역시 앞으로 중국의 AI 기술을 사용하지는 못할 것이다.
-AI안전연구소도 안보강화 차원인가.
▲AI에 특화된 어떤 연구소들은 대학에도 많이 있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도 있다. 9월 말에는 뉴욕대에 글로벌AI프론티어랩을 개소하기도 했다. 한미간 공동 연구개발(R&D) 형태인데 우리 정부 돈이 상당히 많이 투자됐다. 물론 뉴욕대도 상응하는 투자를 하지만 우리나라 연구비로 해외 연구자들과, 특히 해외 석학급 연구자들과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뉴욕에서 함께 연구하는 연구소다. 지난 28일에는 서울 양재AI허브에 국가AI연구거점도 개소했다. 여기도 우리 연구자들과 해외 연구자들이 연구하는 곳이다.
AI안전연구소는 이와는 별개로, 우리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것이다. AI 안전을 중심으로 윤리 규범이나 거버넌스, AI정책이나 나아가 AI안보에 대한 내용까지 연구하는 일종의 AI분야의 최고 전략 싱크탱크로 개소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 연구소장 선임이 막바지 단계다. 11월에는 개소식도 할 예정이다. 얼마 안남았다. 경기 성남 판교 ETRI 부설연구소 형태로 일단을 시작하고, 나중에는 독립시킬 계획이다. AI안전연구소가 중요한게 AI 기술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약간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딥페이크는 한 예다. AI도 안전이 경쟁력이 될 것이다. 자동차가 처음 나왔을 때는 그냥 굴러가면 됐지만, 어느 정도 발전한 다음에는 안전벨트나 에어백, ABS(브레이크 잠김 방지 시스템) 등 안전 부문에서 혁신이 이뤄졌다. AI도 앞으로 본격적으로 우리 삶에 스며들고 산업에 녹아들 때는 안전한 AI가 곧 경쟁력 있는 AI가 될 것이다. 또 국제적인 어떤 합의를 통해서 표준을 맞추느냐도 중요하다. AI안전연구소에서는 안전 기술도 개발한다. 안전 기술 표준화나 인증 관련된 기술도 개발한다. 예를 들면, 딥페이크를 빠르게 탐지하거나 생성형 AI 여부를 판별해 주는 기술 등 이런 것도 안전 기술의 일부다.
-AI위원회 내 분과위원회는 언제쯤 가동되나
▲11월 중에 출범을 시키려고 한다. 대통령이 위촉한 위원들에 부위원장이 위촉하는 위원을 추가해서 분과를 론칭할 예정이다. 지원단까지 설치되면, 회의실도 생기니까 분과 모임을 계속 열 계획이다. 간단하게 지원단 설치와 함께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AI위원회 전체회의는 1년에 2~3번 정도 할 계획이고 주는 분과별 회의다. 이미 AI위원회 내 운영위원회가 매주 진행되고 있으며 AI디지털비서관이 계속 참여하고 있다. 위원들의 열정 또한 대단하다. 미국보다 먼저 준비했음에도 AI안보각서를 미국이 먼저 발표한 것에 대해 많은 얘기가 나왔다.
-그렇다면 우리도 AI안보각서를 발표하나.
▲미국보다는 조금 늦었는데 AI위원회 중심으로 해서 우리 실정에 맞는 AI안보각서를 만들고 대통령께 보고드리려 한다. 올해 안에 대통령 명의로 발표하는게 목표다. 내용은 아직 준비단계지만, 미국처럼 경쟁국, 적대세력의 활동 파악을 우선하는 등의 내용도 포함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적대적 세력의 동향은 필히 모니터링을 해야한다. 우리 정보당국도 이제 이런 쪽으로 안보의 무게 중심을 옮겨와야 하겠다.
-국가AI컴퓨팅센터 설립도 추진한다.
▲2조원 규모로 추진한다. 11월 중에 경제부총리를 추진위원장으로 하는 추진위원회가 발족한다. 2조원은 정부예산, 기업투자, 정책금융 3개가 합쳐져서 만들어진다. 추진위가 발족하면 기업들이 추진위원회에 들어올 것이다. 이 사람들이 컨소시엄을 만들고, 특수목적법인(SPC)를 설립한다. 이 SPC가 국가AI컴퓨팅센터를 어디에 어떤 규모로 언제까지 지을지 등의 로드맵을 마련할 것이다. SPC를 어느 기업이 주도하는지에 따라 부지 등 변수는 남아있다. 이미 지방자치단체들은 유치전에 뛰어들고 있다. 최대한 앞당기려 하고 있다.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등을 통해 2026년 중에는 빠르게 완료하려 하고 있다. 그렇게되면 출자한 SPC 기업에 주도권을 주겠지만 우리의 많은 연구자나 스타트업도 이를 나눠서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광주에 있는 'NHN 국가 AI 데이터센터'과 같은 모델이지만, 규모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광주 역시 규모를 확장할 계획에 있다.
-초대 과학기술수석으로서 목표가 있다면
▲국가AI위원회와 오늘 통과한 국가바이오위원회 등 국가과학기술 관련 거버넌스를 정비하고 토대를 마련하는게 우선이다. 내년부터는 윤석열정부의 과학기술 진흥에 맞춰 AI와 바이오, 양자, 차세대원자력, 수소, 탄소중립 등을 망라해서 국가 미래에 대한 전략을 마련하려 한다.
정리=안영국기자 ang@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박상욱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비서관
초대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된 과학기술정책전문가다.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에서 석·박사를 받은 뒤 영국 서섹스대에서 과학기술정책학 박사를 취득했다. 숭실대에서 행정학과 교수와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재직 중인 올해 1월 윤석열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대통령실에 합류했다.
인재양성전략회의 위원, 국가산학연협력위원회 위원, 수소경제위원회 민간위원, 영국 캠브리지대 산업혁신정책 베비지 포럼 멤버, 서울대 과학기술과 미래 연구센터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문위원, 기획재정부 공공기관경영평가위원 등을 역임했다.
전자신문과도 인연이 깊다. 2004년부터 기고 및 기사 등을 통해 전자신문 독자들과 만나왔다. 2008년 영국 유학 중에는 전자신문의 글로벌통신원으로 전기차와 수소, 태양광, 바이오, 기후변화 등을 주제로 14편의 글로벌리포트를 출고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