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말도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유력 정치인의 법적 리스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인데, 한발 더 나아가 현직 대통령마저 법적 리스크를 떠안은 모양새다.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심 재판과 위증교사 혐의 1심 재판이 이달 중순에 잇따라 예정돼 있고,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늦어도 내년 초에는 대법원판결이 이뤄질 전망이다. 조 대표는 '허위공문서작성' '청탁금지법 위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1심과 2심에서 모두 징역 2년,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받고 대법원에 상고했었다. 이 대표는 1심에서 당선무효형이나 금고 이상 형을 받아도 2심과 대법원판결을 기대할 수 있지만, 조 대표는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나올 경우 그대로 의원직을 상실하고 구속된다. 이처럼 제1야당 대표와 야권 유력주자에 대한 법원 판결, 즉 사법 리스크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정부여당을 향한 야권의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
민주당은 이 대표를 비롯해 박찬대 원내대표 등 지도부와 170명의 현역의원 대다수가 2일 서울역 일대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특검 촉구 국민 행동의 날'이라는 제목의 집회로, 민주당은 30만명이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 탄핵과 함께 임기를 2년으로 단축하자는 주장도 민주당과 조국당을 비롯한 야권이 제기하고 있다. 뭐가 됐든 결론은 윤 대통령을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4월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단독회담을 가졌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국민적, 사회적 분열을 일으키는 이같은 정치적 혼란은 사그라들 줄 알았다. 윤 대통령도 여당의 총선 참패 후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달리진 모습'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년이 지난 현재 현실은 여전히 시궁창이다. 정치를 넘어 정부와 여당,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여당인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은 야당의 이런 행동을 두고, 여론을 선동해 이 대표(또는 조 대표)의 법적 리스크를 방탄하려는 꼼수라고 지적한다. 그럴 수 있다. 아무런 근거없이 계엄령을 언급하던 야당의 모습을 돌아보면 그럴 만도 하다.
문제는 '나는(우리는) 잘못(또는 실수)한 게 하나도 없다'는 식의 대응이다. 여당의 주장처럼 '야당이 법적 리스크 방탄을 위해 여론을 선동하는 것'이라면 그 선동에 힘을 실어준 것은 누구인가? 여의도 언어로 속칭 '정치낭인'인 최재영씨, 명태균씨와 만나고 통화한 사람은 누구인가? 김건희 여사는 최씨에게 명품백을 받았고, 명씨와는 연락을 주고받으며 당 경선룰을 논의했다. 더 나아가 명씨는 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특정인의 공천을 언급했고, 윤 대통령이 이에 답을 했다. 여당과 대통령실은 당시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으로서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 수많은 축하 전화 중 하나였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그저 인사치레로 받았고, 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특히 공무원(대통령)이 아닌 신분으로 사적 대화를 나눈 것에 불과해 공직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대통령의 선거 개입은 중대한 사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랬고, 문재인 전 대통령도 울산시장 선거를 두고 청와대 주요 참모진이 모두 법적 처벌을 받았다. 문 전 대통령 또한 여전히 의혹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우리 국민은 정치에 유독 민감하다. 더 정확히 권력자의 행동 하나하나에 민감하다. 법적 책임과 도의적 책임을 모두 원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탄핵은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여당과 야당 모두 지금처럼 타협없이 정치적으로 끝장을 본다면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이 짊어져야 한다. 북한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파병, 이스라엘을 둘러싼 중동 사태, 미국 대선을 비롯한 수많은 경제안보 리스크 속에서 정치의 실종이 가져오는 파급은 너무나도 크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