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 되면서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트럼프 행정부 2기에는 자국 중심주의와 대중(對中) 기조가 현재보다 견고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세계 무역 판세가 크게 요동치고 우리 산업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되는 만큼, 철저한 비즈니스 맨 마인드로 협상 준비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10%의 보편관세와 60%의 대중 관세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과거보다 더욱 강력한 조치를 예고했다. '디커플링(de-coupling)' 공약을 통해 전산업에서 전방위적으로 중국과 교역 관계를 축소·단절을 공언했다. 미국의 보호무역조치 대부분이 중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우리 기업도 예상치 못한 영향에 유의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으로, 미국의 견제로 중국 완제품의 대미 수출이 줄면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는 한국도 큰 영향을 받는다.
미국이 동맹·파트너 국가와 연계·협력을 중시하는 만큼 공급망 전환 예측 가능성은 높다. 다만, 비관세 장벽 심화에 따라 우리나라 주요 산업의 교역 조건을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우선 배터리 업계는 친 내연기관 성향의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며 타격이 예상되며 대미 수출과 무역수지 흑자 규모 축소가 우려된다.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탈탄소 전환 정책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생산세액공제(AMPC)'도 북미 투자를 앞당긴 요인이었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IRA 폐지를 언급한 만큼 대안 마련이 시급해졌다. 다만, 미시간·오하이오·조지아·애리조나·테네시·인디애나·캔터키 등 배터리 공장이 밀집한 공화당 전략지역에서 IRA 유지를 희망하는 목소리가 있어 IRA 전면 폐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자동차 산업 또한 전기차에 대한 정부지원 축소·폐지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자동차 구매 수요가 늘어나 국내외 전기차 생산설비에 대한 투자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국 우선주의를 기치로 내건 트럼프는 미국 외 생산 차량에 대해 최대 100% 관세 등 과세 부담 확대를 선언한 바 있다. 다만, 한국 기업이 미국의 중국산 전기차 시장 진입 봉쇄로 자동차 부품 공급망의 일정 부분을 대체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반도체 산업의 경우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미국 주도 국제 반도체 분업구조 변화기조가 크게 변하지 않으면서 중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수출 통제 수준이나 범위가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우리 기업의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반도체지원법 보조금이나 세액공제 혜택이 축소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은 있다. 다만, 반도체 산업에서는 미국의 대중국 견제로 한국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미국이 중국 IT기업 화웨이에 대한 견제 강도를 높이면 세계 안드로이드폰 시장에서 한국산 제품이 수혜를 입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철강산업도 부정적 여파가 예상되는 분야다. 탈중국화로 미국시장 진입 자체에 제동이 걸리고 미국 내 생산경쟁력 향상으로 수입규모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관세, 비관세장벽에 기반한 보호무역 심화와 철강 수요구조 변화와 함께 철강 원료 공급망 재편의 압력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바이오의약품 분야에서 바이든 정부의 헬스케어 정책이 축소되거나 극단적으로 철회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는 약가 인하, 자국내 필수의약품 생산, 공적부조·사회보험 개혁등을 언급한 바 있다. 다만 제네릭·시밀러 사용 촉진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으로 한국 바이오시밀러 수요는 최소한 현재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화학 분야는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 조달 안정성은 높아질 수 있다. 트럼프는 바이든 행정부의 그린 뉴딜 즉시 철폐와 대중국 최혜국대우 철폐 등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시행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화학제품 공급망내 조달 안전성은 소폭 높아질 것으로 보이며 사업다각화 관련 투자가 늘어날 수 있다.
안건형 경기대 무역학과 교수 “트럼프는 대통령이기 이전에 비즈니스 맨이라는 점을 명심해야한다. 철저하게 비즈니스 마인드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면서 “자칫 그동안 우리 기업이 미국에 투자한 수십조원이 허공에 날아갈 수 있다. 산업별 민관협의회가 한 자리에 모여서 토론하고 누구를 만나 어떤 것을 협상할 지 서둘러 준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