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스터디기업, 규제 공백에 해외 진출 발목…업계 “제도적 지원 절실”

가상자산사업자(VASP)가 해외 시장 진출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업계 일각에서는 외환 송금이 어려워 법인 설립에 필요한 자본금 납부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홍콩에 최근 법인을 설립하려 했던 한 가상자산 커스터디(수탁) 업체가 자본금 납부 단계에서 좌초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업체 관계자는 “법인 설립 절차는 모두 마무리했으나 은행 내부 규정상 가상자산사업자라는 이유로 외환 송금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면서 “결국 자본금을 낼 방법이 없어 해외 법인 설립 포기를 검토 중”이라 말했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가상자산 관련 해외송금 거래를 제한해 왔다. 가상자산 투기 세력이 김치프리미엄을 악용하는 불법 외환 유출 및 자금 세탁 등 이상거래를 차단한다는 취지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자금 적정성·투자 적정성 검토 과정에서 해외송금을 거절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은행 자체 내부 검토나 자금세탁방지 우려 사항이 있었을 것”이라 설명했다.

문제는 가상자산사업자의 법인 설립과 같은 '해외 직접투자'를 위한 외환 송금 시 근거 법령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외국환거래법 18조는 해외직접투자 시 기획재정부장관에게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거래외국환은행 지정 후 자본거래 신고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기재부 관계자는 “가상자산 법적 지위와 특성에 관한 근거 법령이 미비한 상황에서 해외 직접 투자를 정의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면서 “은행들이 건전한 거래임을 확신하지 못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법인을 대상으로 하는 커스터디 기업들은 글로벌 확장이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미국 유니콘기업으로 성장한 파이어블록스(Fireblocks)와 비트고(BitGo)는 미국 본사 외에도 스위스 싱가포르 등 유럽과 아시아 지역 등에 자회사를 설립했다. 가상자산사업자 글로벌 확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이 필요한 이유다.

업계에서는 인수합병이나 합작투자를 통한 우회적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으나 중소형 가상자산사업자들에게는 현실적으로 비용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6일 출범한 가상자산위원회를 통해 가상자산 근거 법령이 마련되면 이러한 법적 공백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2단계 가상자산법 추진 등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내달 중 관계부처와 함께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할 예정이다.

제1차 가상자산위원회, 발언하는 김소영 위원장 - 지난 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차 가상자산위원회에서 위원장인 금융위원회 김소영 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1차 가상자산위원회, 발언하는 김소영 위원장 - 지난 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차 가상자산위원회에서 위원장인 금융위원회 김소영 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유민 기자 newm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