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인공지능(AI) G3로의 도약을 선언한지 어언 6개월이 지났다. 그러나 국가인공지능위원회의 출범을 제외하곤 눈에 띌만한 가시적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AI 기본법의 통과도, AI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 혁신도, AI 유니콘 기업의 탄생도 아직 발표되지 않고 있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고, AI를 단기적 시각으로 접근해선 안되지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을 볼 때마다 속이 탈 수밖에 없다. 오픈AI는 그토록 빠른데, 우리는 왜 이토록 느린 것인가?
정부는 법률과 예산에 기반해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따라서 대중의 기대치에 비해 느린 움직임을 정부 탓으로만 돌릴 순 없다. 이에 우리는 대응 속도가 빠른 민간기업과 연구기관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더불어 정부는 민간이 빠르게 움직여 글로벌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1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기술사업화 생태계 구축' 선언은 반가운 소식이다. 정부가 연구개발(R&D)이 미래성장동력이 될 수 있도록 시장 조성자로서 역할을 하겠다는 다짐이기 때문이다.
이 선언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투자, 인재, 인프라의 3가지 측면에서 AI 생태계 조성을 위한 마중물을 공급해야 한다.
첫째, AI 전문 벤처펀드를 조성해야 한다. 정부는 그간 한국벤처투자의 모태펀드, 한국성장금융의 성장사다리펀드를 중심으로 벤처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투자 재원을 공급해 왔다. 출자자인 정부 부처는 정책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소재부품장비, 지방, 문화, 관광, 스포츠, 영화, 보건, 환경, 해양, 도시재생 등의 목적을 가진 펀드 결성을 지원했다.
그러나 정작 AI 산업을 전문으로 하는 출자사업은 보이지 않는다. AI 산업이 타 산업 대비 벤처캐피털의 투자 선호도가 높지만, AI 산업 내 전 분야에 자금이 원활하게 공급되기 위해서는 AI 특화 펀드 결성을 위한 출자사업 신설이 절실하다. 더불어 자금시장과 AI 기술을 동시에 이해하는 벤처캐피털리스트의 육성도 중요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기술력 있는 AI 스타트업이 진가를 인정받고, 사업성을 충족하기 전에 고사(枯死)할 수밖에 없다. 업스테이지, 올거나이즈와 같이 기술력과 사업성을 겸비한 AI 스타트업이 글로벌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벤처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둘째, AI 생태계를 책임질 고급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학과 연구기관에 R&D 재원을 공급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수와 연구원들이 적어도 생계비 걱정 없이 연구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AI 산업의 전 분야를 꼼꼼하게 지원해야 한다.
그간 폐단으로 지적되어 온 'R&D 카르텔' 타파도 중요하지만, AI 분야의 석박사과정 학생과 박사후연구원(post-doc)들이 학업과 연구개발에 집중하지 못하고, 중도에 다른 길로 이탈하게 방치해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공공 AI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공공 분야에서 제공해야 할 AI 인프라로 데이터와 GPU, 그리고 전력이 포함된 데이터센터를 꼽는다.
과거 한국판 뉴딜로 시작한 데이터 바우처 사업이 현재 AI 알고리즘 개발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음을 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과거 많은 사람들이 세금을 낭비한다고 손가락질했지만, 이때 조성된 데이터가 개방형 데이터로서 초거대 언어모형과 산업별 특화 언어모형을 만드는 원천 데이터가 되었다. 공공데이터는 그만큼 AI 산업 발전에 필수적 존재다.
더불어 국가 차원에서 GPU를 확보하고, 제공해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보유한 GPU 총량은 H100 기준으로 2000장 남짓에 불과하다. 이마저 대부분은 SK텔레콤,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과 네이버, 카카오를 비롯한 빅테크 기업의 소유다. 대학과 스타트업이 연구개발에 사용할 자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학생과 스타트업 개발자가 마음껏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테스트할 수 있도록 지역 별로 공공데이터센터를 신설해야 한다.
'당신이 더 좋은 그래픽카드를 살수록 더 많은 돈을 아끼게 된다'(The more GPU you buy, the more money you save)는 엔비디아 CEO 젠슨 황(Jensen Huang)의 발언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우리는 단기 수익성을 쫓아 AI, 데이터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는 것이 미래를 갉아먹는 행위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지금이 바로 정부가 나서서 투자, 인재, 인프라 측면의 마중물을 조성하고, AI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확립할 때다.
황보현우 서울대 산업공학과 객원교수·전 하나금융지주 그룹데이터총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