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시절 '트럼프 1기' 행정부를 겪어본 박영선 전 중기벤처부장관은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이 민첩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미국 정부로 부터 보조금을 받지 못할 우려가 크다고 진단했다. 또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으로 미·중 갈등은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서 전략적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전 장관은 24일 전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만 TSMC는 바이든 정부에서 반도체 보조금이 확정됐지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우리 기업들은 아직 보조금과 관련한 사항이 확정되지 않았다”며 “미국정부와 지금 민첩하게 협의하지 않으면 자칫 미국 정부로 부터 보조금을 못받을 우려도 크다”고 했다. 바이든 정부때 서둘러 보조금 지급 협상에 나서더라도 미국이 원하는 준공조건 등을 맞추지 못할 경우 보조급 지급 시기가 늦춰질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 대만, 싱가포르등은 차세대 첨단반도체 산업과 관련해 글로벌 공급망재편에 대비해 미국에 대한 반도체 외교를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며 “윤석열 정부가 반도체 외교에 좀 더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박 전 장관은 올해 초부터 지속적으로 '한국반도체 위기'를 경고해 왔다. 그는 앞서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선임연구원으로 1년 넘게 지내면서 이같은 현실을 더 체감했다. 특히 AI 시대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핵심 기술인 AI반도체 칩과 관련해 현 정부가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봤다. AI 기술격차는 향후 국가 간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전망했다.
박 전 장관은 “AI반도체로의 대전환기를 맞아 미국의 새로운 공급망(New Supply Chain)에 한국과 대만이 빠져 있고, 대신 일본과 싱가포르가 명기된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만은 중국리스크 때문에, 한국은 북한리스크와 일본의 로비 등으로 현재의 메모리 중심에서 더이상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는 미국의 속내가 깔려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 장관은 트럼프 2기 행정부는 1기와 많이 달라질 것이고,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에겐 위기와 기회가 공존할 것으로 내다봤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미 관세 중심의 보호무역주의를 추진하겠다고 여러차례 밝혔다. 국내 수출 기업들도 트럼프 재집권에 따른 관세 폭탄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큰 상황이다.
박 전 장관은 “트럼프 당선인은 바이든 대통령이 해오던 다자관계에서 벗어나 일대일 양자관계로 모든 사안을 끌고갈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과 일대일로 상대해서 이길 나라가 없다는 생각이 반영된 전략”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관세는 미국의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고관세 전략으로 모든 것을 가져 갈 수는 없다”며 “또한 다른 나라보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최고 60%로 높게 매기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어 여기에 대한 면밀한 점검과 이러한 상황을 한국의 기회로 만들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미국 기업들이 중국산 제품을 미리 사재기 하는 것도 트럼프 시대를 대비한 미국 기업의 살아남기 전략 중에 하나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얼마만큼의 전략적 대안을 가지느냐가 중요한 문제”라며 “결국 우리의 역량에 따라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고 본다. 특히 트럼프의 미국은 중국을 경제적 적국으로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우리는 위기와 기회를 잘 찾아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