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소형모듈원전(SMR)의 노형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예산이 국회에서 대거 삭감됐다. 미국 등 선도국이 앞다퉈 개발에 나섰고 실증까지 이뤄지고 있지만 정쟁에 발목을 잡혔다. SMR을 전략 투자 대상으로 낙점한 산업계의 미래 경쟁력 확보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28일 국회 등에 따르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예산 소위는 '민관합작 선진원자로 수출 기반 구축 사업' 예산을 70억원에서 7억원으로 삭감했다.
이 사업은 민·관 공동으로 SMR용 소듐냉각고속로(SFR)의 기본설계안을 개발하는 게 목표다. 정부안에 따르면 내년 정부와 민간기업이 각각 70억원을 투자해 사업을 추진한다.
SFR은 4세대 원전 핵심 기술로 그동안 우리나라도 관련 기술을 축적해 왔다. 상용화에 속도가 날 수 있다는 기대가 컸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처했다.
SFR은 물이 아닌 나트륨 기반 냉각재를 사용한다. 당초 대형 원전 기술로 개발돼 오다 SMR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원자로 내 연쇄 핵분열 과정에서 다량의 열에너지가 발생하는데 기존 경수형 원자로는 고온의 핵연료를 하천 또는 바닷물을 통해 냉각하기 때문에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다. SFR은 액체상태 나트륨을 통해 냉각해 오염수 발생이 적다. 구조도 단순화할 수 있어 콘크리트나 강철 등 외벽 소재 사용량도 줄어든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2008년 설립한 SMR 기업 테라파워는 SFR 기술을 활용하는 대표 기업으로 2030년 상용화를 목표로 건설에 착수한 바 있다.
우리나라도 다수 기업이 SMR의 핵심 기술로 SFR을 주목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기본설계에 참여해 사업경쟁력을 한층 강화한다는 복안이었지만 실현이 불투명해졌다.
국회의 예산 삭감 배경엔 SFR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SFR은 사용후핵연료에서 분리한 초우라늄 원소를 사용한다. 이를 소각해 부피와 독성을 저감하는데 과거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안전성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국회가 R&D 지속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적정성검토위원회를 구성했고 '지속' 의견 나오면서 R&D가 이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SFR 관련 R&D가 진행되고 있지만 탈원전 기조를 유지하는 더불어민주당은 여전히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 보고 있다”면서 “유독 이 사업만 상임위 예산소위부터 대거 삭감됐다”고 말했다.
과기계에선 세계가 차세대 원전으로 꼽히는 SMR 기술 확보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반대 행보를 걷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2021년부터 차세대 원자로·SMR 개발에 7년간 3조6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체계를 통해 차세대 원자로실증사업(ARDP)을 추진중이다.
영국은 SMR·차세대 원자로 기술개발을 위해 1억2000만 파운드 규모의 '미래원자력활성화기금(FNEF)'을 조성했고 중국은 '국가 5개년 발전계획'에 해상 부유식 SMR 개발, 차세대 원자로 실증사업 추진 등의 목표를 포함하고 20기 설치를 목표로 90억달러를 투자 계획이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주요국이 SMR 실증에 나서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앞 단계인 기본설계부터 차질을 빚고 있다”면서 “정부가 역점 과제로 SMR 상용화를 내세웠지만 정쟁에 휘말려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상세설계 등 이후 과정도 줄줄이 지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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