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15년만에 두 달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기준금리 인하가 두 달 연속 이뤄진 것은 2001년 닷컴 버블 사태와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때 뿐이다. 그만큼 현 경제 상황이 녹록치 않다고 진단한 셈이다. 그러면서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1.9%로 낮춰잡았다. 그간 우리 경제를 견인했던 수출 증가세가 트럼프 2기 출범 안팎으로 크게 꺾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28일 기준금리를 현재의 3.25% 수준에서 3.00%로 하향 조정해 통화정책을 운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결정으로 한국과 미국간의 금리 격차는 다시 최대 1.75%로 벌어졌다.
한은이 두 번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한 것은 15년만이다. 2008년 10월부터 2009년 2월까지 여섯차례 연속으로 금리를 인하한 뒤 처음이다.
한은은 통방문을 통해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었지만, 물가상승률의 안정세와 가계부채의 둔화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성장의 하방압력이 증대됐다”면서 기준금리 추가 인하 배경을 밝혔다.
한은은 “앞으로도 국내 경제는 소비가 완만한 회복세를 이어가겠으나 수출 증가세는 주력 업종에서의 경쟁 심화,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으로 당초 예상보다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 올해와 내년 성장률을 지난 8월의 전망치인 각각 2.4%, 2.1%에서 2.2% 및 1.9%로 낮췄다.
이번 전망은 한국의 잠재성장률(2.0%)을 밑도는 수준이다. 한국 경제의 장기 저성장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냐는 질문에 이창용 한은 총재는 “잠재성장률에 대한 새로운 추정치는 연말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최근 수출 환경의 변화와 이에 대한 한은의 인식이 사실상 1%대 저성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 배경에서다.
시장 예상을 깨고 '깜짝 인하'가 이뤄진 배경은 그간 한국 경제의 성장을 견인했던 수출 환경이 미국 대선 안팎으로 크게 변화할 것이란 관측 때문이다. 이 총재는 “3분기 수출이 액수보다는 물량 기준으로 크게 낮아졌다”면서 “(물량 감소가) 일시적인 요인이 아니라 경쟁국과 수출 경쟁이 심화되고 구조적인 요인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금리 인하 배경을 밝혔다.
실제 이날 수정경제전망에서 한은은 내년 재화수출 증가율을 1.5%로 하향 조정했다. 그간 반도체를 중심으로 호조를 이뤘던 한국의 수출 증가세가 꺾일 것이란 전망이다. 인공지능(AI) 선도 기업의 인프라 투자에 힘입어 고성능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늘겠지만, 중국의 반도체·화학제품·철강 공급 확대와 미국의 보호무역강과 등이 우리의 수출 증가세를 제약할 것으로 한은은 관측했다.
특히 지정학적 갈등과 글로벌 무역 갈등 확산을 한국 경제의 주요 하방 위험으로 꼽으면서 이들 요인이 비관적인 시나리오로 흘러갈 경우 내년 성장률이 최대 기존 전망치 대비 0.3%P 낮은 1.6%까지도 떨어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총재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번 기준금리 인하 결정은 기본적으로 수출로부터 나오는 성장세가 내수로 전파되는 온기가 낮아질 것을 대비한 것”이라면서 “수출 확대는 결국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정책이나, 구조개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