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디지털교과서의 핵심 서비스 중 하나인 학습 분석 대시보드는 교사의 역할을 단순한 지식 전달에서 수업의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을 실천하는 조정자로까지 확장하는 잠재력을 제공한다. 대시보드는 학습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 진행 상황, 이해도, 참여도 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교사가 학습 현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여기에서 제공되는 데이터는 단순히 수집된 모든 데이터를 날것 그대로 제시하지 않는다. 대시보드의 가치는 어떤 학습 지표를 선정하고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단순히 과제 제출 여부를 보여주는 데이터에서 더 나아가, 협력 활동에서의 참여 수준이나 피드백 수용도를 시각화하는 지표를 포함한다면 교사는 학습자의 전반적인 학습 패턴과 태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학습 지표는 어떻게 선별될까? 이 지점에서 학습 분석 도구의 설계 과정에서 교사와 에듀테크 개발자 간의 협업이 중요하게 대두된다. 교사들이 가진 전문성으로 도구 설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대시보드를 비롯한 에듀테크의 현장 적합성을 높일 수 있다.
권력이라는 렌즈로 이러한 협업 형태를 바라보면 이는 데이터 또는 도구에 대한 교사의 권력 확장이라고 바라볼 수 있다. 교사가 데이터 또는 도구에 대하여 얼마만큼 권력을 가지느냐에 따라 다섯 단계로 나누어 이야기할 수 있다.
첫 단계는 도구 사용자(tool user)로서의 교사다. 이 단계에서 교사는 에듀테크 기업이 설계한 대로 에듀테크를 사용한다. 도구의 활용법을 익히고, 수업에 적용하면서 교사는 수업에 대한 적용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러한 활용 과정에서 학습 데이터가 축적되지만 이러한 데이터는 교사에 의해 의미있게 사용되지 않는다. 도구와 데이터에 대한 권력이 가장 낮다고 볼 수 있다. 수업 장면에서도 도구는 표면적으로 사용된다. 교사는 수업 개선의 측면보다는 신비함(novety)과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의도로 도구를 사용한다.
두 번째 단계는 도구 활용 수업 설계자(tool infuser)로서의 교사다. 이 단계에서 교사는 수업 설계에 대한 전문성을 토대로 도구의 효용을 바라보고, 수업의 장면에 적절하게 투입한다. 인퓨저(infuser)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도구가 지닌 교육적 가치를 수업에 우려내는(infuse) 실천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교사는 이제 데이터를 읽는다. 이 데이터를 토대로 수업을 설계할 뿐 아니라 수업을 조정(orchestration)하기 시작한다. 교사는 수업 데이터를 제공만 하던 입장에서 이제는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교육부가 추구하는 수업 혁신 실천 교사의 모델은 제가 이야기하는 도구 활용 수업 설계자의 모습과 비슷하다.
세 번째 단계는 도구의 실증가로서의 교사(tool prover)다. 이 단계에서 교사는 도구가 지닌 한계점과 잠재력을 인지하고 현장적합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기업에 제시한다. 이제 교사는 도구와 데이터를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는 도구 개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교사는 에듀테크의 단순한 소비자(consumer)에서 생산 소비자(prosumer)로 변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러한 실증가들 덕분에 에듀테크에 대한 증거를 확보한다. 그리고 더 많은 사용자를 모으기 위해 실증가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에듀테크를 개선한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이 실행하고 있는 에듀테크 소프트랩 사업은 이러한 실증가로서의 교사를 양성하는 동시에 풍부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네 번째 단계는 도구의 공동설계자로서의 교사(tool co-designer)다. 이 단계에서 교사는 기업과 협력하여 서비스, 기능, 학습지표 등을 설계한다. 이제 교사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표현하는 데까지 권력을 가진다. 기업은 공동설계자들과 함께 교육에 적합한 서비스를 만들어나간다. 실증가들이 개선안을 제시하는 데 그쳤다면 이제 공동설계자들의 의견은 서비스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공동설계자로서의 교사들은 소비자의 관점에서 생산자의 관점을 지니게 되고, 헌신하게 된다. KERIS가 2024년 3월부터 모집하여 실시한 교육현안 해결형 에듀테크 프로젝트가 이 네 번째 단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여러 시도교육청에서 디지털 교육 플랫폼 구축을 위한 시나리오 개발 워크샵이나 학습 지표를 개발하는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는 것도 공동설계의 효용때문이라 생각한다.
다섯 번째 단계는 도구의 창조자(tool creator)다. 이 단계에서 교사 주도의 에듀테크 기획과 개발이 이뤄진다. 트라이디스(trythis), 다했니-다했어요와 같은 플랫폼은 모두 교사가 개발 지식을 가지고 직접 개발하였거나, 기획한 도구다. 이제 교사는 어떤 데이터를 받을 것이며 어떻게 처리하고 나타낼지에 대한 대부분의 권력을 지닌다. 이러한 단계는 교실을 떠나지 않으면서 전통적인 교사 역할을 넘어 교육 분야에서 창업적 활동을 수행하는 교사라는 의미의 티처프러너(teacherpreneur·교사 기업가)라는 의미와 비슷하다.
이러한 역할 구분은 선형적이지만 모든 에듀테크에 대해서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어떤 도구에서 창조자 수준으로 높은 전문성과 영향력을 지닐 수 있어도, 다른 도구에 대해서는 활용자나 수업 설계자 수준에 머무를 수도 있다. 교육의 디지털 전환 시기와 맞물려 이러한 권력의 확장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선생님이 에듀테크로 수업 사례를 만들어내고, 연수 강사로 활동한다. 실증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하며, 공동 설계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실천의 총합은 결국 더 나은 공교육, 더 나은 에듀테크 생태계를 만들어낼 것이다.
엄태상 에듀테크스쿨 대표·송북초 교사 sendmethere@naver.com
◆엄태상 에듀테크스쿨 대표·송북초 교사=현 전주송북초 교사로서 에듀테크 실증연구 교사 연구회를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