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회사 엔비디아와 AMD의 최고경영자는 모두 대만계 이민자다. 프랑스는 폴란드 출신의 과학자 마리 퀴리와 미국 태생 흑인 가수 조세핀 베이커의 얼굴을 자국 화폐에 새겼다. 이 나라들은 이민자 증가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불안은 있었지만 출신과 관계없이 능력을 우선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 덕분에 더 빠르게 혁신하고 발전하는 데 성공했다.
다양성 수용의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하면 비교적 뒤져있다고 볼 수 있으며 개방과 협력을 통한 혁신에도 능동적이지 못하다. 최근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가 내놓은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연구개발(R&D)은 투입된 자원에 비해 그 효과가 부족한데, 네이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재의 다양성 확보, 그리고 대학과 기업간의 긴밀한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가 주목할 정도로 빠르게 노쇠해 가는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 아주 특별한 조치 없이는 저출산과 고령화, 생산인구 급감에 따른 경제 활력 저하를 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인적 자원 고갈이라는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동시에 첨단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술 혁신을 담당할 인재 확보에 나서야 한다.
먼저 국내 우수 인재의 해외 유출을 줄이고 필요한 해외 인재는 국내로 들어오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해외 인재 유입을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정책 수립과 실천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특별 비자 신설, 동반자의 입국 허용 확대, 소득세 감면, 행정 편의 제공 등이 필요하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올해 글로벌 코업(co-op)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북미권에서 유학 중인 한국 학생이 국내 중견기업에 인턴으로 일할 수 있게 연결했고 국내 취업을 고려하는 학생이나 대기업으로 인재 유출을 경험하는 중견기업 모두 호의적이었다.
우리나라 인재를 해외의 선진 연구 현장에 파견하여 국제공동연구를 하거나 기술 수준 향상을 모색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KIAT는 올해 초 네덜란드에 국내 석·박사생들이 참여하는 반도체 아카데미를 운영했고, 이공계 학부생을 대상으로 미국 현지에서 산업 현장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올해부터는 산업원천기술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중장기 대규모 글로벌 공동 R&D 과제를 선정해 국내 연구자들을 미국과 유럽 등지에 파견할 예정이다.
국내 인재를 체계적으로 관리해 첨단산업 현장에 잘 투입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기업에서 원하는 현장형 엔지니어를 양성하려면 기존 정규 교육 말고도 시의성 있는 집중 교육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마련될 필요가 있다. 현장 경험이 많은 퇴직자와 여성 인력 현황을 파악하고 이들을 활용할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대학 교직원의 창업을 장려하고 산업체 출신 엔지니어가 대학에서 전문 분야를 강의할 수 있게해 대학과 기업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작업도 계속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필요한 해외 인재 및 기술에 대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자체 네트워크가 있는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중소중견기업은 해외 전문가 유치나 국제기술협력에 관심이 있어도 시도하기 어렵다. 기업들이 온라인, 오프라인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인재와 기술 관련 정보를 획득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그 일환으로 KIAT는 재외 한인 공학자 네트워크(K-TAG)를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 중소중견기업들이 국제 공동 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자문해주는 전문가 모임으로 현재 670명이 활동 중이다. 아울러 해외 유수 대학과 연구기관에 글로벌 산업기술 협력센터(GITCC)도 설치했다. 국제협력 파트너 발굴과 과제 기획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현지 기반이 마련한 셈이다.
최근에는 '테크 지피티(Tech GPT)'를 구축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기술 논문, 특허, 뉴스, 인재 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석해서 알려주는 대화형 기술정보 플랫폼이다. 이 외에도 KIAT는 연구개발 장비, 사업화 자금, 양산을 위한 성능 평가, 규제 혁신에 필요한 정책적 도움 등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글로벌 기술 선도를 위해서는 우수한 인재 양성 및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국내 자원에만 의존하는 폐쇄적인 전략으로는 지금과 같은 경쟁의 속도를 감당할 수 없다. 이에 우리 정부와 국회는 우수 인재 양성과 해외 인재 유치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내년 초에 본격 시행될 예정인 '첨단산업 인재 혁신 특별법'이다. 해당 법안에는 기업이 직접 맞춤형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관련 인력을 양성하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지난 9월에는 '글로벌 개방 혁신을 위한 첨단산업 해외 인재 유치활용 전략'을 발표했다. 이 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우리 산업계와 연구 현장에 글로벌 개방 혁신에 대한 의식을 심어주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AI)의 발달 덕분에 100년도 넘게 걸릴 단백질 분석이나 신약 개발을 몇 년으로 단축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기술을 가능하게 만드는 주체는 결국 사람이다. 인재 확보가 혁신의 첫 단추라는 것은 AI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대한민국이 산업기술 경쟁력을 키우고 글로벌 기술 선도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를 포함해 다양한 인재와 기술을 유연하게 포용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국내외 소중한 인재들이 우리나라 기술 혁신의 주축이 될 수 있게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에 모든 노력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민병주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bjmin@kiat.or.kr
〈필자〉 전문 과학기술인으로 시작해 국회의원, 기관장으로 선임된 인사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치·정책 분야까지 확장했다. 1959년생으로, 이화여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일본 규슈대에서 핵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일본원자력연구소에서 근무하다 1991년 한국원자력연구소 최초의 여성 유치 과학자로 입소했다. 이후 20년간 국내 원자력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19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고,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회장과 한국원자력학회장도 역임했다. 2022년 9월부터 KIAT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민간 주도 성장 전략을 뒷받침할 정책을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