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145〉KAIST 대덕캠퍼스 시대 활짝

KAIST는 1990년 3월 2일 대덕캠퍼스에서 현판식과 신입생 입학식을 갖고 제2 도약을 다짐했다.
 KAIST 제공
KAIST는 1990년 3월 2일 대덕캠퍼스에서 현판식과 신입생 입학식을 갖고 제2 도약을 다짐했다. KAIST 제공

“가야 한다.” “가기 싫다.”

1988년 들어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사부 대덕연구단지 이전을 놓고 정부와 교수들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다.

과학기술처는 1988년 4월 12일 노태우 대통령에게 “KAIST 학사부와 연구부를 분리 독립시키겠다”고 보고했다. 기존 서울 홍릉캠퍼스는 연구부가 사용하고 학사부는 한국 최초의 기술도시인 대덕으로 이전해서 한국과학기술대학(과기대)과 통합한다는 계획이었다.

KAIST 학사부 교수들은 이에 즉각 반발했다. 교수들은 4월 27일 '대덕 이전과 과기대 통합에 관한 의견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재학생 80%가 서울 출신인 만큼 우수한 학생과 교수진 확보가 쉬운 서울캠퍼스를 계속 운영해야 하며, 다수 교수들의 생활권이 서울에 있어 이전하면 연구 활동에 막대한 차질이 불가피하다”면서 “과기대와의 통합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과학기술처 당시 관계자의 말. “KAIST 학사부 대덕 이전 방침에 대해 생활권이 서울인 교수나 학생들은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KAIST 대덕 이전은 1984년에 이미 결정된 정책이었습니다.”

5공화국 시절인 1984년 4월 27일 전두환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제1회 기술진흥심의회에서 이정오 과학기술처 장관은 '대덕연구단지를 고도과학기술중심 기술도시(테크노폴리스)로 육성하기 위한 종합계획'을 보고했다. 이 계획에 KAIST 대덕 이전이 들어있었다.

이에 앞서 4월 10일 한국개발연구원에서 열린 예산정책협의회에서도 대덕연구단지 활성화를 위해 KAIST와 한국전자기술연구소(현 한국전자통신연구소) 등 중추 연구기관을 이전키로 결정했다. 회의에는 조경목 과학기술처 차관, 전학제 KAIST 원장, 문희갑 경제기획원 예산실장 등이 참석했다. 정부는 대덕을 과학기술 줌심도시로 육성하기 위해 연구와 교육을 담당하는 KAIST를 이전 대상에 포함시켰다.

1984년 8월 24일 경제기획원에서 신병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주재로 열린 경제장관협의회에서도 대덕연구단지를 기술도시로 육성·발전시킨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서울에 있는 정부출연연구기관과 교육기관 등을 1987년까지 대덕단지로 이전키로 확정했다.

이전 대상은 KAIST·한국에너지연구소(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한국동력자원연구소·한국전자기술연구소 등 4개 정부출연 연구기관, 국립과학관(현 국립중앙과학관)·기상대(현 기상청) 등 2개 국가기관과 한국산업기술대학 등이었다.

정부는 연구기관 이전에 따른 건설비 2300억원 가운데 1874억원을 국고에서 지원키로 했다. 이에 따라 한국토지개발공사는 1985년 3월부터 대덕연구단지 부지 매입을 시작했고, 이어 설계와 토목·건설 공사에 착수했다.

KAIST도 1985년 10월과 11월 '대덕 확충 이전을 위한 학사조직과 건물배치에 관한 발전계획'과 'KAIST 대덕확충 이전 계획'등을 잇따라 발표했다.

3년 후인 1987년 3월 25일 오후 2시 정부는 대덕단지 내 KAIST 부지에서 이태섭 과학기술처 장관, 최종완 KAIST 이사장(전 과학기술처 장관), 이정오 KAIST 원장, 강창희 국회의원, 한양수 충남지사, 김홍식 대전시장, 연구기관장, 현지 주민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건물기공식을 거행했다.

이태섭 장관은 기공식 치사를 통해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기술도시인 대덕연구단지에 KAIST가 이전해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대의 과학기술과 교육 도시로 발전하게 됐다”면서 “정부는 대덕연구단지에 과학두뇌와 기술인력을 정착시키기 위한 세계 수준의 최고 과학기술도시를 조성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정오 원장은 식사를 통해 “기술도시인 대덕연구단지로 KAIST가 이전하면 한국 과학기술의 새로운 도약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KAIST 건물은 대덕연구단지 서남쪽 115만5000㎡(약 35만평) 부지 위에 교육과 연구시설 등 모두 11만5500㎡(8만9000여평) 규모이며, 총 공사비 1560억원을 투입해 1989년 완공한다는 계획이었다.

비교적 순조럽던 KAIST 대덕 이전에 난기류가 흐른 것은 제6공화국이 들어선 1988년 4월부터다.

과학기술처 당시 관계자의 증언.

“정부가 KAIST 학사부와 연구부를 분리 독립키로 하면서 서울 홍릉캠퍼스를 연구부, 즉 KIST가 사용하고 KAIST 학사부는 대덕연구단지로 이전해서 과학기술대학과 통합키로 하자 학사부 교수들이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교수들의 대덕 이전 반대를 수용할 수 없었어요. 이미 대덕연구단지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서 학교 건물을 짓고 있었고, 교수들이 주장한 서울 홍릉 인근에 대단위 학교 부지를 확보하는 일도 불가능했습니다.”

1989년 2월 22일 KAIST는 이사회를 열고 제6대 원장에 초대 원장을 지낸 이상수 박사를 선임했다. 이 원장은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 대학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화여대·서울대 교수를 거쳐 원자력연구소장·원자력청장 등을 역임했다.

1989년 6월 1일 대덕연구단지에서는 이상희 과학기술처 장관, 최영환 과학기술처 차관, 이상수 원장, 한기익 대덕단지 관리소장, KAIST 교수 등 18명이 모여 '과학원 발전방향 간담회'를 열었다. 참석한 교수들은 “좋은 학생 대부분이 수도권에 있는데 이곳으로 지원해 오는 학생이 많지 않을 것”이라며 기존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양측은 입장 차이만 확인했을 뿐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상희 장관의 생전 회고. “과학기술도시인 대덕연구단지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아야 한국에 희망이 있습니다. 과학기술은 근본적으로 세분화·전문화로 가야 합니다. 따라서 KAIST는 과학기술 중심 교육, KIST는 연구 중심으로 분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과학기술처는 KAIST와 과학기술대학 통합에 따른 교수들의 신분 보장이나 우수한 과학기술 인력 양성이라는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후속 작업에 착수했다.

1989년 7월 4일. 정부는 KAIST 학사 규정을 대통령령 제12749호로 일부 개정해 공포했다. 이에 따라 독자의 길을 걷고 있던 두 대학은 조직과 운영 등을 하나로 통합했다. 과기대는 명칭을 KAIST 과학기술대학으로 변경했다.

이상수 원장은 이듬해인 1990년 1월부터 서울을 떠나 대덕캠퍼스로 사무실을 옮겨 업무를 시작했다.

이상수 원장의 생전 증언. “두 번째 원장직을 맡았는데 참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대덕 이전을 놓고 중대한 결심을 했습니다. 홍릉캠퍼스에는 신·증축이 어려워 시설 확충에 한계가 있었어요. 나는 교수들에게 대덕으로 캠퍼스를 옮겨야 한다고 여러차례 이야기를 했습니다. 교수들 간 찬반이 갈렸고, 대덕으로 이전하면 '시골대학 된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1990년 3월 2일. 날씨는 화창했다.

KAIST는 이날 교수들과 갈등의 벽을 넘어 새로 건설한 대덕캠퍼스 정문에서 이상희 과학기술처 장관, 최종완 KAIST 이사장, 이상수 원장, 이봉학 대전시장, 박승덕 과학기술처 기술정책실장, 서정만 국립과학관장, 이상태 대덕단지관리 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현판식을 거행했다. 지난 1987년 3월 기공식을 가진 후 3년 만의 현판식이었다.

대덕캠퍼스는 8250㎡(2500평) 규모의 중앙도서관을 비롯해 18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와 학생 교수회관, 체육관, 독신자 숙소 등을 갖추었다.

KAIST는 현판식에 이어 이날 오후 2시 과기대 강당에서 내빈과 학부모 등 7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석사과정 신입생 605명과 지난해 KAIST에 통합한 과기대 신입생 547명에 대한 첫 입학식을 거행했다. 대덕시대 개막이었다.

이상수 원장은 식사를 통해 “이제 KAIST는 학사-석사-박사로 이어지는 과학영재양성 기관으로 자리를 잡았다”면서 “앞으로 세계적인 연구중심 대학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KAIST는 17년 만에 서울 홍릉캠퍼스를 떠나 대덕 새 캠퍼스에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입학식을 치른 것이다.

KAIST는 이날부터 한국 과학기술영재 육성과 글로벌 가치 창출 선도대학을 향한 담대한 여정을 시작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