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정부·언론·기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해제 이후에도 한국 정세의 불확실성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윤 대통령의 거취 문제를 비롯한 후폭풍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이런 전망에 따라 자국민의 한국 방문·여행 자제를 권고하는 나라도 늘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3일 윤 대통령의 비상선언을 두고 “이번 명령은 겨우 6시간 정도 지속됐지만, 에너지가 넘치는 민주주의로 알려진 한국에서 이것은 광범위한 파장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WP는 이어 “윤 대통령의 이례적 조치가 많은 한국 사람의 분노를 끌어냈다”고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사태가 “미국의 소중한 동맹국 중 하나(한국)에서 정치적 혼란을 초래했으며, 평화적인 반대를 억압하고 경찰국가를 만들었던 전후 독재정권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켰다”면서 “그러나 윤 대통령의 책략은 긴박한 밤사이에 역효과를 낳았으며 서울에서 해가 뜰 무렵에 그는 한발 물러섰다”고 전했다.
미국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나아가 윤 대통령의 거취 문제를 언급하며 비관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CSIS는 이날 홈페이지에 빅터 차 한국석좌 등이 작성한 문답 형식의 글을 통해 “4일 새벽 계엄령은 해제됐지만 윤 대통령의 국내적 생존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불확실하다”면서 “계엄령 선포를 뒤집기 위한 국회의 신속한 움직임, 지지율이 10%대인 대통령에 대한 거리 시위 확산은 윤 대통령의 (정치적) 몰락 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본 언론은 이번 사태가 한국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평가와 함께 국교정상화 60주년을 앞둔 한·일 관계에 미칠 파장을 우려했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내달 초 한국 방문이 불투명해졌다는 전망도 했다.
일본 공영 NHK 방송과 요미우리신문, 아사히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 일본의 주요 일간지는 일제히 윤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실었다.
NHK는 한국 비상계엄 해제 이후에도 최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결의문을 통해 윤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촉구한 소식과 함께 정국이 혼란을 이어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비상계엄 선포부터 포고령 발표, 국회 표결, 비상계엄 해제 등 일련의 사건을 속보로 전하면서 “윤 대통령이 정치국 난국 타개를 노리고 비상계엄 선포라는 강경책을 단행한 것으로 보이지만, 여야가 모두 비판을 강화해 구심력 저하가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일본 언론은 특히 이번 사태가 내년 한·일 국교정상화 및 수교 60주년을 앞두고 개선 흐름이 이어졌던 양국 관계에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요미우리는 “국교정상화 60년에 맞춰 관련 행사도 검토가 이뤄진 가운데 계엄령이 찬물을 끼얹는 일이 될 듯하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이시바 총리는 4일, 총리 관저에서 한국 계엄 선포에 따른 일본인 안전과 한·일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기자의 질문을 받고 “어젯밤 계엄령이 내려진 이후 특별하고 중대한 관심을 갖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의 정세가 당분간 불안하다고 보고 자국민의 방문 자제 등을 권고하는 나라도 늘고 있다.
미 국무부는 '한국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에 따른 미국 시민을 위한 지침'을 발표하고 한국을 방문한 자국민에게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4일 하루 미국 시민권·비자 신청 관련 업무를 중단하고, 대사관 직원들은 재택근무를 늘리며 직원 자녀의 대면 등교도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영국 외무부는 한국에 대한 긴급 여행 경보를 발령하면서 “현지 당국의 조언을 따르고 대규모 대중 집회를 피하라. 광화문, 대통령 집무실(삼각지), 국회(여의도) 주변에서 시위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호주 외교부는 해외 체류 호주인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스마트 트래블러' 웹사이트를 통해 “한국 정치 상황 변화로 한국의 상황이 변화하고 있다”며 “시위와 집회를 피하라. 서울 광화문 광장과 여의도 등에 평소보다 더 인파가 몰리고 시위 활동이 활발해질 수 있다. 교통 및 기타 필수 서비스가 중단될 수 있다”고 전했다. 주한 호주대사관은 이날 대면 업무를 중단하기로 했다.
이스라엘 외무부도 자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한국 방문을 재고하라”고 권고했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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