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금융권과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내부 통제 단속에 나서고 있다. 그간 미비했던 법령을 정비하는데 속도를 내는 것은 물론 기존 내부통제 관행을 강화하라며 재차 촉구하고 나섰다.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불확실성 속에서 금융 시장의 안정을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투자협회는 오는 18일부터 일반사무관리회사(수탁사)와 집합투자기구평가회사(펀드평가사), 채권평가회사 등 펀드 관계회사의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펀드 관계회사 표준내부통제기준'을 시행한다.
그간 수탁사, 펀드평가사 등 펀드 관계회사에 대해서는 뚜렷한 내부통제 기준이 부재했다. 이번 기준 제정을 통해 준법감시인 선임 절차와 독립성 확보 등 펀드 관계사에게도 내부통제기준 마련이 의무화된다. 지난 1월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공모펀드 경쟁력 제고 방안에 따라 펀드 관계회사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다.
우리금융지주, 신한투자증권 등 금융권 안팎으로 각종 문제가 터져나오면서 그간 금융당국은 책무구조도 도입 등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 이미 지난 7월부터 금융지주와 시중은행에는 책무구조도 도입이 의무화됐다. 각 지주사와 시중은행도 이사회 안건으로 내부통제 관련 사안을 추가하는 등 내규 정비 절차를 완료했다.
금융당국에서는 지난 3일 이후 정치적 불안정성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기존 내부통제와 관련해 더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5일에도 증권사 CEO와 가상자산사업자 준법감시인을 연이어 소집해 불안정한 분위기 속에서도 내부통제 기능이 원활히 작동되도록 할 것을 각별히 주문하기도 했다.
금융당국의 내부통제 강화 방침은 단순히 금융 사고 방지를 위한 것 뿐만 아니라 시장 위험 관리에 만전을 기하기 위한 행보로도 해석된다. 특히 최근의 정국 불안정으로 인한 외환시장의 변동성에 대해서는 금융당국을 비롯한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등 외환당국에서도 매일 같이 회의를 열어 변화 추이를 점검하고 있다. 금감원이 앞서 증권사 CEO에게 “유동성, 환율 등 위험 요인 별로 시장 상황 급변에 대비한 종합 컨틴전시 플랜(비상 대응 계획)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최근 금융당국의 행보를 연말을 앞두고 대규모 사장단 인사가 잇따르고 있는 만큼 무리한 사업 추진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중점을 두라는 암묵적 신호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번 증권사 간담회 자체도 당초 내부통제 강화를 목적으로 준비됐지만 갑작스런 비상계엄이란 상황에서도 취소 없이 연기해 강행할 만큼 당국의 메시지가 강했다”면서 “적어도 금융시장 만큼은 내부통제 부실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만 바라는 분위기가 역력했다”고 전했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