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총 800조' 美 보험사 CEO 피살… 탄피엔 “거부·방어”

지난 4일(현지 시각) 미국 맨해튼 미드타운에서 발생한 유나이티드헬스케어 CEO 살인 사건 용의자. 사진=뉴욕경찰(NYPD).
지난 4일(현지 시각) 미국 맨해튼 미드타운에서 발생한 유나이티드헬스케어 CEO 살인 사건 용의자. 사진=뉴욕경찰(NYPD).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총격 사건으로 거대 의료보험사 최고경영자(CEO)가 살해된 가운데, 현장에서 발견된 범인 사용 탄피에서 보험 용어와 비슷한 '거부', '방어', '증언' 등 글씨가 새겨진 것으로 확인됐다.

AP 통신 등에 따르면 뉴욕경찰(NYPD)은 지난 4일(현지 시각) 미국 맨해튼 미드타운에서 발생한 브라이언 톰슨(50) 유나이티드헬스케어 최고경영자(CEO) 피살 사건과 관련해 사건 정보를 업데이트했다.

톰슨 CEO는 이날 아침 뉴욕 힐튼호텔에서 열리는 연례 투자자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거리를 걷던 중 길거리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총격범은 그의 뒤에서 접근해 소음기가 달린 총으로 총격을 가하고 피해자가 쓰러진 것을 확인하고 현장을 벗어나 인근에 준비해 둔 자전거를 타고 도주했다.

수사관은 용의자가 지난달 조지아주 애틀란타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뉴욕에 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인근 호스텔 로비 폐쇄회로(CC)TV에 찍힌 마스크를 쓰지 않은 용의자의 사진을 추가 공개했다. 호텔 체크인 중 직원에게 농담을 던지고 웃는 등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경찰 소식통은 ABC 뉴스에 “용의자는 호텔에서 다른 남성 두 명과 방을 함께 썼다”고 전했다. 체크인에 사용된 신분증은 위조 신분증으로 확인됐다.

이번 사건에 대해 제시카 티쉬 NYPD 국장은 “표적을 노린 공격”이며 “사전에 계획된 살인”이라고 말했다.

범행 현장 CCTV에는 용의자가 다른 행인을 지나치고 피해자가 오기를 기다린 것처럼 총격을 가하는 모습이 담겼으며, 현장에 발견된 탄피에는 '거부'(deny), '방어·변호'(defend), '진술'(depose) 등이 새겨져 있었다.

AP는 탄피에 적힌 단어가 변호사나 변호업계가 보험금 지급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에서 자주 사용되는 '지연'(delay), '거절'(deny), '방어'(defend) 등을 따라한 것이라고 봤다. 보험사가 보험금 지불을 지연하고, 청구를 거부한 것에 대한 자신의 행동을 자체적으로 변호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유나이티드헬스케어는 건강보험사 가운데 보험금 청구를 거절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보험사 중 하나다.

민간 보험사는 일반적으로 지급률 관련 데이터 공개 의무가 없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웹사이트 밸류펭귄에 따르면 이 회사의 보험금 지급 거절율은 약 32%다. 업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며, 지난 2021년 기준 정부 자금 지원 보장 지급 거부율(17%)의 두 배에 가깝다.

특히 지난 10월 발표된 미국 상원 상임소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이 보험사의 메디케어 어드밴티지 플랜의 지급 거부율이 최근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급성기 이후 재활 치료(병원에서 집으로 복귀하는데 필요한 의료 서비스) 거부 비율이 지난 2020년 10.9%에서 2022년 22.7%로 급등했다.

이 같은 악명 때문인지 살인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에서는 용의자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나왔으며 실제 유나이티드헬스케어에서 보험금 청구를 거절당한 경험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한 일부는 “수사가 빠르게 진행된다는 점은 반갑지만, 다른 살인사건도 이처럼 수사해달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