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종주국을 자부하던 독일 자동차 산업 위기론이 현실화되고 있다.
중국발 저가 전기차 공세에 따른 판매 침체로 공장 생산 능력이 과잉된 가운데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쏟아부은 전동화,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로의 전환은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어서다. 독일 자동차 업계는 과감한 투자를 집행했던 중국 판매가 침체되는 등 위기 상황에 놓였다.
독일 자동차 업계의 위기는 유럽 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칠 만큼 큰 파장이 예상된다. 독일 전체 산업 매출에서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20% 이상이다.
이뿐만 아니라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한다는 유럽연합(EU) 규제는 각 업체에 과도한 투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폭스바겐 공장 3곳 폐쇄, 임금 10% 삭감 추진
폭스바겐은 독일 내 공장을 3곳을 폐쇄하고 전체 직원 임금을 10% 삭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독일 내 폭스바겐 공장은 10곳, 직원은 약 12만명에 달한다. 공장폐쇄에 따른 인력 감축 대상은 최대 3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수익성이 악화된 폭스바겐은 2026년까지 비용 절감 목표를 기존 100억유로(약 15조원)에서 40억~50억유로(약 6조~7조5000억원)로 상향했다. 이를 위해 독일 내 공장을 폐쇄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노조와 맺은 고용안정 협약을 파기하고, 정리해고 가능성도 열어뒀다. 하지만 노사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노조가 전면 파업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폭스바겐그룹 계열 스포츠카 브랜드 포르쉐는 2030년까지 전체 생산량의 80%를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사실상 수정했다. 아우디 역시 내년 2월 3000명이 근무하는 벨기에 브뤼셀 공장 가동을 중단한다. 공장 매각까지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BMW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악의 실적을 내며 고전하고 있다. 올해 3분기 순이익은 작년보다 83.8% 줄었고, 자동차 부문 영업이익률은 2.3%에 그쳤다. 팬데믹 초기인 2020년 2분기 이후 최저치다. BMW 중국 내 판매량은 1년 사이 30%가량 줄었다. 메르세데스-벤츠도 수익성 확보를 위해 과감한 비용 절감을 추진할 방침이다.
독일자동차산업협회(VDA)는 자동차 관련 일자리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4만6000개 줄었으며, 2035년까지 최대 19만개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독일 현지 매체들은 “높은 제조 비용과 전기차 전환 지연, 주요 시장인 중국에서의 치열한 경쟁 상황 속에 놓인 자동차 업체들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쉬·ZF·콘티넨탈, 대규모 '구조조정' 착수
세계 자동차 부품 업계를 선도하던 독일 3대 부품사도 후폭풍을 맞았다. '보쉬' 'ZF' '콘티넨탈' 등은 강력한 구조조정 계획을 연달아 발표했다.
매출액 기준 세계 1위 부품사 보쉬는 수년 내 자동차 사업부 직원을 최대 5500명 감원할 계획이다. 보쉬는 독일 내 가장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 온 기업 중 하나다. 전 세계 보쉬 임직원 수는 42만9000명이며 23만명이 모빌리티 부문에 근무하고 있다.
보쉬는 2027년까지 첨단운전자지원과 자율주행 기술, 차량용 소프트웨어(SW) 분야를 중심으로 3500명을 감원한다. 전체 일자리 감축의 절반은 독일에서 이뤄진다. 보쉬는 “미래차 기술 시장이 예상보다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며 “현재 미래차 사업 분야의 많은 프로젝트가 완성차 제조사에 의해 연기되거나 포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 2위 부품사 ZF는 전기차와 모빌리티 사업 경쟁력 약화를 이유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추진한다. ZF는 2028년까지 독일 내 임직원 수를 1만명 초중반대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ZF 임직원 수는 5만4000명에 달한다.
ZF는 구조조정 계획에 대해 “전기차 시장의 치열한 경쟁과 비용 압박, 수요 약세에 따른 것”이라며 “인력 감축은 주로 전기 파워트레인 기술 사업부에 집중된다”고 설명했다.
독일 3대 부품사이자 세계 8위에 해당하는 콘티넨탈 역시 자동차 부문 직원 수천명을 줄인다. 콘티넨탈은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해 내년까지 연간 자동차 관련 지출을 4억2800만달러(약 6000억원) 절감하겠다고 밝혔다.
자동차 사업 분야는 6개에서 5개로 축소한다. 향후 축소 통합할 사업 영역은 스마트 모빌리티 분야다. 콘티넨탈은 감원 대상을 4자리 중반대라고 밝혔으며, 독일 현지 언론은 5500명의 근로자가 해고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콘티넨탈은 “자체 자원으로 미래에 투자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수익성을 만들어야 한다”며 “구조조정을 통해 시너지가 있는 사업 영역에 기술 솔루션을 제공, 시장 요구 사항에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연 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