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통상질서 칼럼] 트럼프 2.0 시대, 이제 ESG 안 해도 되나요?

안재용 KOTRA 글로벌공급망실장
안재용 KOTRA 글로벌공급망실장

트럼프가 당선되면 화석연료로 다시 돌아간다는데 이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도 속도 조절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트럼프 당선 후 수출기업 A사의 질문이다.

올해 들어 EU를 중심으로 물밀듯이 몰아치는 ESG 관련 규제의 파고를 생각하면 기업들이 막연한 기대를 갖는 것도 이해할만하다. 탄소 국경조정제도(CBAM), 공급망실사지침(CSDDD) 등 탄소 절감과 공급망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규제가 현실화되면서 기업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먼저 유럽 상황을 보면 지난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우파가 약진하면서 자연복원법, 내연기관 퇴출과 같은 환경법안을 재검토하겠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달에는 EU 집행위가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 공급망실사지침(CSDDD), EU분류체계(Texonomy) 등 공시제도를 간소화해 기업의 보고의무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기도 했다. 더욱이 최근 폭스바겐과 티센크루프의 경영난이 드러나면서 규제 중심의 EU 정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 이는 EU 그린딜에 대한 회의론에도 불구하고 ESG의 방향성에는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게 있어 그린딜은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그린 전환을 통해 다시 경쟁력을 되찾겠다는 산업전략이자 생존전략이다. 그래서 집권 2기를 맞는 폰데라이엔 집행위원장도 '청정산업 딜'을 새롭게 제안하며 탄소중립을 통해 경쟁력 확보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유럽의 정치환경 변화로 인해 ESG 추진 일정이 다소 지연될 수 있으나 지속가능성으로의 큰 흐름에는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미국 상황은 좀 더 명확하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공공연히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혜택 축소와 화석연료로의 회귀, 파리조약 탈퇴 등을 공언하고 있기 때문에 환경정책의 추진동력이 다소 약화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2기에 거론되고 있는 관세, 대중 견제, 환경정책 등의 구체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좀 더 면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조치가 트럼프의 정책인지 미국 공화당의 당론인지, 혹은 미국 내에서의 합의인지에 따라 정책의 유효기간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대중 정책은 트럼프 1기와 바이든 정부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면에서 상수로 받아들여야겠지만 환경정책의 경우 미국 내에서 합의가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탄소 포집이나 수소 등 청정산업에 이미 대규모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환경정책은 추진동력을 되찾을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ESG 중 노동·인권 분야는 트럼프 2기에서 보다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인권 법안인 '위구르 강제노동 방지법'은 트럼프 1기 때 공화당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이 제안하고 바이든 정부에서도 일관되게 시행된 규제 법안이다. 최근 EU에서도 강제노동 관련 규정이 통과되어 노동·인권 분야에 대해서는 미국은 물론 EU와도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미국 강제노동 규제는 태양광 산업에 집중되어 있었으나 최근 핵심 원자재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어 우리 기업도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제 수출기업 A사의 질문에 답할 때가 된 것 같다. ESG를 주도하던 미국과 EU의 정치환경 변화로 인해 일부 분야에서 속도 조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ESG를 향한 큰 흐름에는 변화가 없고 노동 인권 분야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기업들은 시간을 벌었다고 안도하기 보다는 한 발 앞서 ESG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시간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안재용 KOTRA 글로벌공급망실장 andya@kotr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