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영옥·이예종 모녀 후원자 “40여 년 꾸준한 후원의 원동력은 '나눔의 3가지 철칙'을 지키는 것”

홀트아동복지회 장기 후원자 전영옥(왼쪽)·이예종(오른쪽) 모녀가 인터뷰 후 홀트아동복지회 본부 로비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홀트아동복지회
홀트아동복지회 장기 후원자 전영옥(왼쪽)·이예종(오른쪽) 모녀가 인터뷰 후 홀트아동복지회 본부 로비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홀트아동복지회

“40년 가까이 후원을 해오면서 갖게 된 나눔의 철학은, 돈이나 물질은 내 것이 아니고 나는 단지 빌려쓸 뿐이라는 것. 그러니 필요한 것 외에 남는 것은 무조건 나눠야 할 의무가 내게 있다는 것입니다”

홀트아동복지회 장기 후원자로 1986년부터 현재까지 38년간 후원을 이어온 전영옥(메디아이여성병원 임상영양사, 75세) 씨는 꾸준한 후원의 원동력을 이같이 밝혔다.

전영옥 씨와 홀트아동복지회의 인연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열한 살 때 '대한늬우스'에서 해리 홀트 부부가 한국 고아들을 위해 헌신하는 영상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 후 20년이 지난 1980년대 중반쯤 동료 영양사들과 홀트일산요양원에 견학을 가게 되었는데, 제가 알던 그 홀트 씨가 홀트일산요양원의 설립자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는 그곳에서 부모 잃은 아이들을 보게 됐고 첫 후원을 시작하게 됐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사랑하는 설립자 부부의 정신을 70년 동안 실천하고 있는 홀트아동복지회 덕분에 제가 후원을 지속할 수 있다”는 감사인사도 잊지 않았다.

전영옥 씨는 홀트아동복지회의 후원을 시작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얼굴 없는' 후원자로 29년간 초등학생 급식비 후원, 13년간 중고생 장학금 후원 등을 이어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영양사 경력이 쌓이다 보니 숭의여대와 안산대학 등에서 24년간 강사와 겸임교수로도 활동했는데, 첫 강사료를 받을 때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월급 외에 생긴 돈은 내 돈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후원을 하라고 마련해주신 돈이니 나는 그 심부름을 할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눈에 도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초중고 아이들의 후원을 하게 되었죠”

전영옥 씨의 딸인 이예종(김천대학 사회복지학과장, 49세) 교수 역시 2011년부터 13년간 홀트아동복지회를 후원하며 어머니와 뜻을 같이하고 있다. 노인복지(치매 돌봄) 및 웰다잉 전문가이기도 한 이 교수는 노인학대 예방과 노인인권 보호에 기여한 공로로 경상북도시자 표창을, 의료취약계층 복지향상 활동으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HPM 총동문회로부터 공로패를 받기도 했다.

전영옥 씨는 “물질적 후원도 중요하지만 예종이처럼 직접 현장에 가서 봉사를 실천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점에서 딸에게 배우는 것이 많다”며 딸의 후원과 봉사활동에 적극 응원과 지지를 보냈다. 그러면서 이예종 교수가 외부 특강으로 받은 강사료를 그 기관에 그대로 기부하거나 연말정산 때 받는 환급금을 베트남, 미얀마 등 해외봉사활동 갔던 곳의 아이들을 위해 고스란히 기부하는 것을 보면서 내 딸이지만 자랑스럽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어머니에 비하면 부끄럽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물질적 후원은 물론, 해외봉사활동에 동행해 나눔의 동기부여를 심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초등학교 때 우리 반에 시설에 있는 친구가 있었는데 어머니는 그 아이를 위해 준비물을 꼭 두 개씩 챙겨주셨다”며 “크리스마스나 생일에 좋은 브랜드의 운동화나 학용품을 선물 받으면 그것도 그대로 고아원에 갖다 주셔서 어린 마음에 섭섭함도 없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자라면서 어느새 그것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며 “어머니는 한 번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직접 말씀하신 적은 없지만, 몸소 행동으로 가르쳐 주셨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지금도 여전히 한 달에 한 번씩 후원금 지로용지를 들고 두 정거장 거리의 은행까지 직접 걸어가서 후원금을 내고 온다는 전영옥 씨는 그 이유에 대해 “후원에 대한 3가지 철칙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전영옥 씨의 3가지 후원 철칙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후원은 보는 즉시 듣는 즉시 그 자리에서 시작한다. 이튿날이 되면 흐지부지되기 때문이다. 둘째, 일단 시작하면 언제까지 할 것인가는 걱정하지 않는다. 후원을 못할 만큼 형편이 어려워지면 그때 그만두면 된다. 셋째, 정기후원을 시작했다면 그 사실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자동이체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후원금이 빠져나가면 후원 사실을 잊어버리게 되고 그러면 후원에 대한 의미가 흐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내가 누군가를 후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앞으로 지속적으로 후원할 의지도 생기는 것”이라며 “그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꼭 은행에 직접 간다. 그 모습을 보고 후원을 시작한 사람도 여럿 있다”고 덧붙였다.

“30년 근속한 직장에서 정년은퇴 후 다시 19년간 영양사로 일하는 축복을 받은 것은 끊임없이 후원을 하라는 뜻인 것 같다”는 전영옥 씨는 “이제 실무에서 떠나 완전히 은퇴하면 직접 현장에 들어가 몸으로 봉사하면서 후원할 계획을 갖고 있다”는 포부를 밝혔다.

모녀 합산 51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꾸준히 후원을 지속해온 두 모녀 기부자는 오늘도 여전히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퍼뜨리는 기부 전도사로 그 역할을 충실히 실천하고 있다.

이원지 기자 news21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