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TI 혁신기술] 〈2〉 “산성 물질 사용 無”…친환경 비산화 그래핀

전자현미경으로 측정한 KETI의 친환경 비산화 그래핀. 보통 흑연이 두꺼울 경우 뒤가 비치지 않는데, 5나노미터 미만 두께로 얇게 박리했기 때문에 뒤의 판이 보이고 있다. 〈사진 KETI 제공〉
전자현미경으로 측정한 KETI의 친환경 비산화 그래핀. 보통 흑연이 두꺼울 경우 뒤가 비치지 않는데, 5나노미터 미만 두께로 얇게 박리했기 때문에 뒤의 판이 보이고 있다. 〈사진 KETI 제공〉

그래핀은 현존하는 소재 중 강도, 전자이동도, 열전도성 등이 가장 뛰어난 물질로 꼽힌다. 탄소 원자들이 2차원 벌집 구조로 연결돼 구리보다 전도도가 100배 이상 빠르고 강철보다 200배 이상 강하다.

이런 그래핀을 산업 현장에 접목하기 위해 '산화 그래핀'이 양산되고 있다. 다만, 산화 그래핀은 강한 산성 물질을 사용해서 화학적으로 그래핀을 박리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져 세척 과정에서도 많은 폐액이 발생하고 환경 오염 문제가 발생한다.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은 이런 그래핀의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유독 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흑연에서 그래핀을 박리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물에 독자적인 첨가제를 넣은 복합용액을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첨가제 속 성분이 물의 점도를 높이는데, 흑연에 이 용액을 첨가한 뒤 특수 장비로 압력을 가해 그래핀을 떼어내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화학적인 산화 및 환원 반응 없이 그래핀을 박리하기 때문에 물리적 방식으로 분류되며, 물리적 방식으로 박리한 그래핀은 '비산화 그래핀'으로 불린다.

이 기술로 만든 그래핀은 제조 시간이 짧고 순도 높은 수 나노미터(㎚·10억분의 1m) 두께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우선 그래핀 순도가 높아 전도성이 높다. 기존 산화 그래핀은 그래핀 표면 산소들이 탄소들과 결합하기 때문에 불순물인 산소를 완전히 제거하기가 어렵다. 비산화 방식은 산소와 결합하는 과정이 없어 순도를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다.

또 KETI 기술은 그래핀 박리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전통적인 산화 그래핀 박리 공정이 5마이크로미터(㎛) 면적 기준 1주일 정도 소요되는데, 이를 평균 1시간으로 대폭 단축할 수 있다.

KETI 연구원이 SEM 현미경을 통해 친환경 공정 그래핀을 관찰하고 있다. 〈사진 KETI 제공〉
KETI 연구원이 SEM 현미경을 통해 친환경 공정 그래핀을 관찰하고 있다. 〈사진 KETI 제공〉

양우석 KETI ICT나노융합연구센터 수석연구원과 연구팀은 친환경 비산화 그래핀 박리 기술을 활용해 이차전지, 전기차 등 적용 분야에 따라 그래핀 두께 및 크기를 최적화로 제어한다는 구상이다.

양 수석연구원은 “이차전지의 도전재 소재로 사용하려면 전도도가 좋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산소 같은 불순물을 모두 제거한 고순도 그래핀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KETI는 친환경 공정의 생산 수율을 50% 이상으로 높여 상용화하고, 향후 관련 특허를 확보한 후 기술을 이차전지용 도전재 및 정전기 방지용 코팅제 등에 적용할 계획이다. 이차전지 전극 도전재에 적용하면 배터리 효율성과 수명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래핀을 기존 도전재 소재인 단일벽 탄소나노튜브(CNT)와 혼용하는 것이 목표다. 단일벽 CNT만을 사용했을 때보다 낮은 가격과 높은 성능을 얻을 수 있다. KETI 연구진은 양극 및 음극의 집전체에 환원 그래핀을 코팅하면 집전체와 활물질 사이 접촉 계면의 전기적 특성이 CNT보다 우수하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KETI는 국내 기업과 협력을 통해 그래핀 순도를 높이는 제조 공정을 최적화해서 가격 경쟁력을 갖춘 도전재용 차세대 그래핀을 양산할 계획이다.

김영호 기자 lloydmin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