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HBM에 가려진 韓 메모리 위기

우리나라 반도체 성장을 이끈 메모리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인공지능(AI) 붐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는 호조를 띠고 있지만 HBM을 제외한 다른 제품들은 침체에 놓여서다.

18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 마이크론 실적은 이를 여실히 보여줬다. 마이크론은 2025년 회계연도 1분기(9~11월) 양호한 실적을 내놨다. HBM 등 데이터센터 관련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00% 급증한 결과다.

그러나 HBM 외에는 부진했다.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HBM 호실적 만으론 전체 실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스마트폰과 PC용 D램 수요 감소를 상쇄하기엔 부족했다”고 말했다. 이어 “단기적으로 소비자 지향형 시장은 더 약화될 것”이라며 악화된 2분기(12월~2월) 가이던스를 내놨다.

마이크론 HBM
마이크론 HBM

마이크론의 이같은 전망은 국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내년 사업 전망을 어둡게 한다. 각 사가 사정이 다르다 해도 삼성, 하이닉스, 마이크론 3사는 글로벌 메모리 시장의 95%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즉,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스마트폰과 PC 수요 감소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란 얘기다.

SK하이닉스는 그나마 HBM으로 충격을 상쇄하고 있다. HBM 1위 업체로 시장을 선점한 효과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다르다. 삼성은 AI 반도체 1위인 엔비디아로부터 HBM3E 납품 승인도 받지 못 했다. 게다가 미국의 대중 제재로 조만간 중국 수출길도 막힐 상황이어서 엎친 데 덥친 격으로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HBM이 계속 날개 돋힌 듯 판매되면 그래도 희망적이겠으나 이 역시 담보할 수 없다. 반도체는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 사이클 산업이고, AI 시장도 성장만 할 수 없을 것이다.

HBM 착시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메모리는 위기다. 스마트폰, PC, 서버에 들어가는 주력 제품들 가격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 제품(DDR4 8Gb 1Gx8)의 평균 고정 거래가격은 지난 7월 2.1달러에서 11월 1.35달러로 넉 달 새 35.7%나 빠졌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DDR5 등 첨단 메모리들이 속속 등장하며 한국을 추격하고 있다.

대책과 대응이 시급하다. 한국 반도체의 핵심이자 원동력인 메모리 산업이 위기다. 공학 분야 우리나라 대표 석학들이 모인 한국공학한림원이 “한국 반도체가 절체절명의 위기”라고 진단하고 나섰겠는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 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