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타고라스의 귀에는 대장장이들의 망치질 소리가 조화로운 음악 연주로 들렸다. 다양한 음정은 망치의 모양이나 재질이 아닌 '무게'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6, 8, 9, 12파운드인 망치들의 조합이 1대2, 2대3, 3대4의 모든 (한 옥타브 차이의 8도, 5도, 4도) 음정들을 만들어냈다. 피타고라스는 최초로 '물리' 현상인 '음파'와 '수리' 현상인 '비율' 사이의 연결점을 꿰뚫었다.
인류가 처음 출현한 아프리카의 한 초원으로 가보자. 무서운 사자는 '어흥'하는 굵은 저음으로 포효(roar)하고, 고양이는 '야옹(meow)', 쥐는 '찍찍(squeak)'하는 가는 고음으로 울어댄다. 야생에서 수풀 너머 저편에 출현한 상대가 사자일지 고양이일지를 판단하고, 줄행랑을 치거나 사냥에 나서는 것은 생사가 걸린 문제다. 평생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하이에나의 울음소리일지라도, 소리의 '주파수'를 결정하는 '물리법칙'은 이미 우리들 귀의 달팽이관 발생을 주관하는 DNA에 '생존법칙'으로 새겨져 있다.
울음소리의 크기는 발성의 세기나 방향과 거리에 달렸지만, 소리의 높낮이인 주파수는 그 동물의 성대의 크기가 결정한다. 성대 단면의 지름은 동물의 몸집과 대체로 비례해서, 사자의 큰 성대는 굵은 저음을, 고양이의 작은 성대는 가는 고음을 낸다. 주파수는 발성 위치까지의 거리나, 방향, 얼마나 화가 난 상태인지 등과 무관하다. 작지만 멀리서 저음으로 들려오는 사자의 울음소리가 더욱 공포스러운 이유다. 피타고라스의 천재성은 진화를 통해 우리의 DNA에 깊이 새겨진 '물리법칙'과 '수리법칙' 사이의 관계성을 깨달았음에 있다.
얼마 전 현대 언어학의 창시자 노엄 촘스키는 “챗GTP는 최첨단 표절기계일 뿐”이라고 혹평했다. GPT의 명칭인 사전학습 변형생성기(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에 드러나듯 촘스키 자신이 70년 전에 제안한 변형생성문법(Generative Transformational Grammar)이 GPT 개발의 핵심 이론임에도 무엇이 촘스키를 실망시켰을까? GPT가 쏟아내는 '언어를 닮은 문자열'들은 '의미'가 담긴 진정한 언어가 아니었음에 당혹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표절기계'라는 촘스키의 혹평에 강하게 동의한다. 한편 '의미론'이 결여된 '표절기계'가 막대한 '산업적 효용성'을 창출할 것이라는 주장에도 동의한다.
진정한 아이러니는 촘스키 스스로 언어를 수학적 도구로 해체했으며, 사람은 태생적으로 '언어습득장치'를 타고 남을 가정해, 비록 물리세계와 형이상학 속 '의미'와 격리된 불완전 형태로나마, '수리'와 '논리' 연산만으로도 '무의미 언어습득장치' 구현 가능성을 제시한 선구자라는 점이다. 컴퓨터가 하는 일은 오직 '수리'와 '논리' 연산뿐이다. 수리 연산은 수의 세계 속에 닫혀있다. 1+2=3, 3+4=7처럼 수의 연산 결과물은 모두 수다. 3+'코끼리'나 4+'명제p'는 불가능하고 연산은 깨진다. 논리연산도 마찬가지고, 물리현상도 물리세계 속에 닫혀있다. 피타고라스의 통찰은 '물리'와 '수리', 굳게 닫힌 두 세계를 연결한다.
이제 '무의미 언어습득장치'인 GTP가 '언어'의 변형생성 연산 결과인 '표절 언어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물리, 논리, 수리의 발견에 이은 '어리(語理)'의 새 발견이다. '어리'는 전통적 '문법'과는 차별되며, 다양한 언어와 문법 사이의 번역이라는 난제를 크게 해결했다는 점에서 구체성과 보편성을 갖는다. 그런데 '코끼리'+'냉장고'를 도대체 어떻게 연산하란 말인가? 우리는 암흑상자 속에 가려진 '무의미 언어'의 '부조리 연산법칙'을 잘 모른다. 하지만 '어리'가 논리뿐 아니라, 수리, 물리와도 깊이 연결됨만큼은 자명하다. '의미' 요소는 '언어 사용 패턴' 속에 조금씩 스며있으리라 짐작된다. '역사성'과 '객체성'이 결핍된 물리만으로는 수억년의 진화와 문명을 일궈온 우리들 삶의 경험과 여정을 다 담을 수 없다. 디지털 사피엔스는 영속적인 생존과 번영에서 얻은 경험과 그 의미들을 DNA와 언어라는 기호체계 속에 선명하게 새겨두었다.
김주한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juha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