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채의 센스메이킹] 〈77〉'다이브 인' 기술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CES 2025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이번 주부터 시작하는 CES 2025는 '다이브 인(Dive in)'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Dive in'이라는 슬로건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제시한 '플로(Flow)' 개념을 연상시킨다. 플로는 단순한 몰입을 넘어 행위자가 활동 속에서 깊은 만족감과 의미를 발견하는 최적의 경험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작년의 슬로건 'All Together, All On'과 비교해 보았을 때, 인공지능(AI) 기술의 심층적 활용과 탐구로 초점이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작년 CES가 AI 기술의 대중화를 강조했다면, 올해는 그 대중화를 넘어서 AI 기술이 사용자들에게 실제로 어떤 실질적 유용성을 제공하는지가 핵심 기준이 되었다. 결국 업계의 기업들이 단순히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넘어, 이제 기술의 가치와 의미를 재발견해야 하는 시점임을 드러낸다.

그동안 우리는 AI 기술의 발전에 대해 경탄과 우려, 기대와 실망의 과정을 겪으며 AI와의 협업에 눈을 떠 왔다. 하지만 이제 AI 기술의 탑재는 기본적인 사양으로 자리 잡았다. 기술이 일상생활에 깊숙이 스며들면서 사용자들은 AI의 존재와 역할을 당연시하게 되었고, 이는 기술에 대한 주목성의 감소와 경이로움의 상실로 이어졌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가 지적했듯이, 이는 기술에 대한 도구적 관점의 지배를 보여준다. 하이데거는 현대인이 기술을 단순한 도구로 바라보면서 기술의 본질적 의미를 놓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상황은 기술 개발자들에게 새로운 사용자 경험과 의미를 제공할 수 있는 가치 창출의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 사회는 모든 것이 유동화되는 특징을 보인다. 개인의 정보와 프라이버시도 이러한 유동화 현상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생존 전략은 극명히 갈리고 있다. 메타(Meta)와 같은 대기업은 막대한 자원을 활용해 AI를 기존 서비스에 성공적으로 통합하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레이밴 메타 스마트 글라스는 사진 촬영과 음악 감상 등 AI의 본질적 기능을 넘어선 다양한 사용 사례를 제공하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의 이면에는 사용자 데이터의 광범위한 수집과 활용이라는 윤리적 딜레마가 존재한다.

반면, 소규모 스타트업들은 재정적 여력이 부족해 생존의 압박을 받고 있지만, 오히려 이러한 제약이 새로운 가치 창출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븐 리얼리티(Even Realities)와 룩테크 AI(Looktech.AI)는 사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보다 세부적이고 다양한 옵션 제공을 통해 차별화된 가치의 스마트 글라스를 제안한다.

CES 2025에서는 가정 내 에너지 AI 관리 시스템, 손가락에 착용하는 AI 스마트 링, AI 기반 헬스케어 디바이스 등 실질적인 유용성을 제안하는 제품들이 주목받고 있다. AI 기반 에너지 관리 시스템은 단순히 에너지 절약을 넘어 환경 보호에 기여한다는 가치를 제공하며, AI 스마트 링은 개인의 건강 관리를 통해 삶의 질 향상이라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한다. 이러한 제품들은 기술이 단순히 효율성을 제공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삶에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끄는 기술로 자리 잡아야 함을 보여준다.

기술 포화 상태는 사회 구조와 문화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경고했던 것처럼, 기술의 과잉은 역설적으로 의미의 공백을 초래할 수 있다. 기술이 모든 계층에 보편화되면서 기술에 대한 접근성의 평등화가 이루어졌지만, 동시에 기술 피로감이라는 새로운 실존적 문제가 나타난다. 이는 단순한 피로를 넘어 현대인의 존재론적 불안을 반영한다. 따라서 기술의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문화적 맥락과 인간의 실존적 요구를 깊이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기술이 인간의 삶에 깊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려면, 단순히 기능적 혁신에 그치지 않고 사용자 경험을 재발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하트무트 로자는 현대 사회의 가속화 현상을 비판하며, 진정한 혁신은 '공명(Resonanz)'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공명은 주체와 대상 사이의 의미 있는 관계 맺음을 의미한다. CES 2025는 기술과 인간 사이의 이러한 공명을 모색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앞으로의 기술은 인간 중심적 가치를 강화하고, 일상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인간과 기술이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ryan@reasonofcreativit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