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인터뷰] '하얼빈' 유재명, '배우본질에 인(忍), 인간미에 인(引)'(종합)

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영화 '하얼빈'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 유재명과 만났다. (사진=에이스팩토리, CJ ENM 제공)
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영화 '하얼빈'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 유재명과 만났다. (사진=에이스팩토리, CJ ENM 제공)

“배우는 대중적 인기도 이면에 직업적으로 자기자신과 싸움을 거듭한다. 많은 작품을 함께하는 배우동료들과 스태프들의 노력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배우 유재명이 영화 '하얼빈'에서의 모습 못지않은 묵직한 메시지를 건넸다.

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영화 '하얼빈'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 유재명과 만났다.



영화 '하얼빈'은 1909년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는 이들과 이를 쫓는 자들 사이의 숨 막히는 추적과 의심을 그린 작품이다.

유재명은 극 중 연해주 한인사회와 독립군들을 뒷받침했던 '최재형'으로 분했다. '페치카 최'라는 별명과 함께 현지 한인들과 독립군을 품었던 아버지이자 형님같은 실존인물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호흡해 눈길을 끌었다.

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영화 '하얼빈'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 유재명과 만났다. (사진=에이스팩토리, CJ ENM 제공)
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영화 '하얼빈'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 유재명과 만났다. (사진=에이스팩토리, CJ ENM 제공)

특히 안중근(현빈 분)과 함께 동지들의 죽음에 눈물을 삼키는 다락방 신은 혈기어린 독립군들을 아우르는 따뜻함과 냉철한 판단력 사이, 당대의 슬픔들을 연상케 했다.

-흥행소감?

▲영화관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에도 많이 봐주셔서 감사하다. 어려운 난관에 부딪쳤을 때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가는 그 분들의 모습에 공감을 해주신 것 같다.

눈물을 흘리시던 나이 지긋한 관객부터 함께 '까레아 우라'를 외치는 분들까지 무대인사로 마주한 관객분들의 다양한 반응들 속에서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동료들과 스태프들이 지녔던 중압감의 보상을 받은 듯, 뿌듯하고 감사하다.

-최재형 역 캐스팅의 부담은 없었나?

▲우민호 감독과는 내부자들, 마약왕 등에 이어 세 번째 호흡이다. 제안을 받고 최재형 선생의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많이 몰랐던 부분들을 알게 됐다. 최재형기념사업회에서 보내주신 디테일한 자료들과 함께 안중근 의사의 거사는 물론 연해주 독립운동사 전반에 영향을 준 정신적 지주임을 알고 더욱 잘 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은근히 저와 닮아보이는 비주얼을 보며 친밀감을 느끼면서도(웃음), 옳은 일에 대한 신념과 시대적 아픔들을 잘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부담이 없지는 않았다.

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영화 '하얼빈'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 유재명과 만났다. (사진=에이스팩토리, CJ ENM 제공)
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영화 '하얼빈'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 유재명과 만났다. (사진=에이스팩토리, CJ ENM 제공)

-시나리오상 감정선은 어땠나?

▲낯선 경험이었다. 지문이나 대사들이 정갈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톤으로 돼있으면서도, 그 사이사이를 꽉 잡는 호흡들이 있었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아우르는 상업영화 가운데서도 그 경계를 잘 타는 느낌이었다. 물론 감정적으로 증폭시킬 장치들이 없다는 것 자체가 아쉬울 수는 있지만, 영화가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지점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의거 전 폭발사고에 따른 다락방 눈물신에서 보듯, 극 중 가장 감정적인 캐릭터라고도 볼 수 있다. 어떻게 접근했나?

▲같은 맥락이지만 가장 감정적이기도 하고 가장 절제된 인물이라고도 생각했다. 무수한 독립의거 속에서 젊은 친구들이 산화하는 것을 보면서도 슬픔을 눌렀던 사람으로서, 냉철함을 지니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다락방 눈물신만큼은 정말 격정적이었다. 현장 공간구성이나 자세부터 하나하나 고민했던 것과 함께, 그 순간만큼은 다 드러내달라고 했던 감독님의 말을 듣고 몸 안의 수분을 다 털어낼 정도로 여러 번 오열했다. 그렇게 나온 어둠 속 오열신은 나중에 봤을 때도 정말 감정적으로 격한 느낌을 줬다.

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영화 '하얼빈'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 유재명과 만났다. (사진=에이스팩토리, CJ ENM 제공)
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영화 '하얼빈'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 유재명과 만났다. (사진=에이스팩토리, CJ ENM 제공)

-마음에 남는 신이 있다면?

▲모든 걸 걸고 일본군과 싸우는 전투신도 있겠지만, 저는 오히려 기차 안에서 3인의 청년들이 가족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좋더라. 그들의 신념이나 독립의 무게감을 잠시 내려놓고, 당시 청년들의 순수한 삶의 이야기들을 풀어낸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생각한다.

-현빈·박정민·조우진·전여빈·이동욱 등과의 현장 에피소드?

▲그들과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멋진 일이었다. 전여빈 배우와는 함께 작품을 많이 했기에, 새로운 만남으로서 든든했다. 또 현빈 배우는 관성처럼 흘러가는 게 아니라 순간순간 정확한지 고민하면서 깨어있으려고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소방관에 이어 하얼빈까지 연말연시 흥행요정이 됐다. 어떤가?

▲하얼빈도 그렇지만, 소방관 역시 자신의 신념으로 목숨을 걸고 누군가를 구하는 희생의 이야기다. 스코어를 떠나서 여러 부침을 거쳐 연말의 여러 힘든 마음들을 다독이며 감동을 줄 수 있었다는 데 뜻깊다. 매번 흥행요소나 캐릭터보다는 작품의 메시지에 주목해서 출연을 결정하는데, 그것이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 기쁘다.

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영화 '하얼빈'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 유재명과 만났다. (사진=에이스팩토리, CJ ENM 제공)
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영화 '하얼빈'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 유재명과 만났다. (사진=에이스팩토리, CJ ENM 제공)

-'하얼빈'의 메시지?

▲감독님이 촬영에 들어갈 때 이 작품의 메시지로 '용기와 양심'을 말씀주셨는데, 그 '양심'이라는 말이 와닿더라. 비상식의 시대에서 찾아가는 상식과 양심,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태도가 주는 숭고함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매년 7~8편 이상 작품을 하는데, 어떤가?

▲제게 주어지는 작품들이 너무 소중해서 하나하나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최근 육체적 나이도 한 살씩 먹어가면서 막막함을 느끼는 와중에 '삼식이 삼촌' 때 송강호 선배께 조언을 요청했었다.

“인(忍)해라”라고 하시더라. 잘 조절해가면서 제 삶에 깊이 남은 작품들을 해나가고 싶다.

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영화 '하얼빈'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 유재명과 만났다. (사진=에이스팩토리, CJ ENM 제공)
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영화 '하얼빈'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 유재명과 만났다. (사진=에이스팩토리, CJ ENM 제공)

-실제 나이보다 높은 연령대의 캐릭터를 주로 하는데, 그를 떨치고 싶은 생각은?

▲화면에서 나이들어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긴 한다(웃음). 아마 '이태원 클라쓰' 이후부터 그렇게 잡힌 것 같다. '행복의 나라' 전상두 역을 하면서도 그렇고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은 배우로서 좋은 것 같다.

-디즈니+ 다작을 해오고 있다. 글로벌 인기체감은?

▲저희 영화와 드라마를 독일쪽 번역으로 소개해주시는 팬분도 계시고, 아랍 팬분들이 소방관 촬영할 때 응원해주시기도 하시더라.

그와 함께, '하얼빈'으로 함께 한 릴리 프랭키(이토 히로부미 역) 배우가 '응답하라1988'을 알고 있고, 다른 해외배우분들도 많이 알아보시더라. 우리 영화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파급되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하다.

-새해 계획?

▲넉오프와 러브미를 찍고 있다. 윤세아 배우와 새롭게 호흡하는데, 기대만큼 열심히 잘 해보고 싶다.

박동선 기자 ds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