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 규제 대상을 전 세계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중국, 러시아 등 적대국에 전략자산이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다. 동맹국인 한국은 제재 대상이 아니지만 미국 기업의 AI 반도체 수출 감소 시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을 공급하는 국내 기업에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9일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이르면 10일(미국시간) 세계 국가들을 3개 등급으로 나눠 AI 반도체 수출을 제한하는 추가 규제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기존 규제와 마찬가지로 미국 수출관리규정(EAR)에 근거해 이뤄진다.
1등급 국가는 한국, 일본, 대만,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호주 등 18개 동맹국이다. 이들 국가를 대상으로는 추가 규제가 이뤄지지 않는다.
핵심은 2등급이다. 블룸버그는 바이든 행정부가 국가별로 수출할 수 있는 총 컴퓨터 연산력 상한을 설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2025~2027년까지 3년간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개로 제한하는 안이 거론되고 있다.
3등급으로 분류되는 적대국인 중국, 북한, 러시아, 벨라루스, 쿠바, 이란, 이라크, 미얀마, 캄보디아 등 20여개국으로의 수출은 전면 금지된다.
미 정부가 추가 수출 규제에 나서는 건 적대국인 중국, 러시아가 AI 반도체를 우회적으로 확보하는 행위를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첨단 기술에 접근한 통로로 추정되는 중동, 동남아시아 등의 국가에 추가 규제를 적용해 봉쇄하겠다는 구상이다.
미국 정부가 공식 발표하지 않았지만 실제 규제가 이뤄지면 AI 반도체 관련 기업에 악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GPU를 만드는 엔비디아, AMD, 인텔 등 미국 반도체 기업에는 물론 GPU와 맞물려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하는 HBM 제조 업체, 즉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도 영향권에 들 수 있다.
AI 반도체 대표 주자인 엔비디아는 즉각 반발했다. 엔비디아는 블룸버그를 통해 “세계 대다수 국가에 수출을 제한하는 규정은 (AI 반도체) 오용 위험을 줄이기보다 경제 성장과 미국 리더십을 위협할 것”이라며 “가속 컴퓨팅에 대한 세계적 관심은 미국 경제 성장을 촉진해 일자리를 늘릴 엄청난 기회”라고 강조했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기업들의 반발은 있겠지만 AI 반도체가 미국 전략물자라는 점에서 추가 규제 실현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미국은 여야를 떠나 국가 안보 관점에서 반도체를 바라보는 시각은 같기에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현재 정책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규제안을 발표하더라도 예정된 기업 수출과 행정적 절차 등을 고려해 일정 유예기간이 있을 수 있다. 기업들도 정부가 법적 권한이 넘어선 규제라 주장하며 법적 대응에 나설 수도 있으나, 국가 안보와 외교 정책에 따른 조치이기에 법원에 유의미한 결정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박진형 기자 j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