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올해 3학년부터 AI 디지털교과서를 쓴다고 하는데 학부모가 정보를 구할 데가 없어요. 매번 기사를 보면서 파악하는 수준이에요. 적어도 2학년 마무리할 때쯤에는 어떤 교과를 AI 디지털교과서로 쓸 것인지 정도는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고양시 초3 학부모)
AI 디지털교과서 전면 시행을 앞두고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쟁의 도구로 전락한 AI 디지털교과서 때문에 정부와 교육청 사이에서도 엇박자가 나면서다.
3월부터 초3·4학년, 중1, 고1 일부 과목에 AI 디지털교과서를 전면 도입할 예정이었지만, 현재 교과서가 아닌 교육 자료로 격하하면서 각 시도교육청에서도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여부도 제각각인 상황이다. 학부모들은 가뜩이나 정책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교육청마다 다른 입장을 내비치는 것에 대해 더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서울시 초등생인 학부모 A 씨는 “어느 지역에서는 반대하고, 어느 지역에서는 적극 쓰겠다고 하는데 아이들 교육을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해도 되는 건지 황당하다”면서 “시범적으로 사용한다고 하다가 정권이 바뀌면 그냥 흐지부지되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AI 디지털교과서를 교육 자료로 격하한 초·중등교육법 법률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에 나설 예정이지만, 올해는 그 지위와 상관없이 1년 도입 유예기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수성향의 교육감과 진보성향 교육감에 따라 AI 디지털교과서 채택 여부도 나뉘어 혼란이 예상된다.
일단 경기·경북·대구 교육청은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적극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은 앞서 “신학기부터 AI 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해 미래형 교육 전환에 발맞춰 가겠다”고 밝혔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도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따라 디지털 인프라 구축과 교원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한 준비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AI 디지털교과서 채택 의지를 보였다.
반면, 'AI 디지털교과서 교육 자료 격하 반대 건의문'에 “합의를 거치지 않았다”고 반박했던 서울과 울산시교육청은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유보적이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처음부터 AI 디지털교과서를 교과서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다”며 “교육 자료로 사용해 보고 교육적 효과가 있으면 교과서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울산교육청 역시 시범 사업을 우선 해본 뒤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지역에 거주하는 학부모 B 씨는 “뉴스를 봐도 정확히 알 수 없어서 답답한 마음에 교육청에 문의했는데도 제대로 된 답변이 없다”며 “교육청도 정확한 정책 방향을 정하지 못해 망설이는 것 같은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런 사태가 장기화한다면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박남기 광주교육대 교수는 “AI 디지털교과서 개발 당시부터 시범 적용 기간을 거쳐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정부는 일괄 적용을 강행했다”며 “다만 모든 것이 완료된 상황에서 법을 바꾸면 교육 현장의 혼란은 물론 예산 낭비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교수는 “지금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끝내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방안을 빨라 찾아야 한다”면서 “시범 도입한 뒤 AI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하는 학교와 활용하지 않는 학교 간 비교연구 등을 통해 효과검증을 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지희 기자 eas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