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나는 50대 중반의 남자다. 사는 건 치열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부터 “내가 오늘도 살아갈 가치가 있나?”를 되묻게 된다. 가치관의 혼란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나이 마흔 즈음부터 꾸준히 들었던 단어였지만, 이제는 내 삶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내 위치, 내 역할, 그리고 내 책임에 대한 의문들 말이다.
우리가 살던 시대는 그야말로 혼란의 연속이었다. 20대엔 IMF로 무너진 경제를 붙잡느라 허덕였고, 30대엔 Y2K를 지나면서 세기말 혼란과 종말론 속에 정보기술(IT) 버블이라는 기회와 혼동 속에서 살았다. 그 이후로도 쉬운 날은 없었다. 하지만 50대가 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삶이 무겁게 느껴진다. 이 무게는 단순히 내 책임 때문만은 아니다. 나보다 젊은 세대, 그리고 나보다 나이 든 세대 사이에서 중간다리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무겁다.
선배들에게 1940년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물론 그 시절의 형무소나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고통은 내겐 없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아이들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적 메시지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고 들었다. 그들의 삶은 책임과 생존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요약될 것이다. 그 시대의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주먹을 꽉 쥐고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던 모습들. 그리고 아이들에게조차 강요되던 무거운 책임의 무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의 나도 그 시대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전쟁터처럼 보였던 그 시절은 사라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새로운 전쟁터에서 살아가고 있다. 다만 총칼 대신 우리는 경쟁과 경제적 생존이라는 무기를 들고 싸운다. 그 옛날, 9살 꼬마가 형무소 앞에서 끝까지 버텼던 것처럼, 나 역시 끝까지 버티는 법을 배워야 했다. 하지만 버틴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50대 중반에 이르니, 스스로를 위해서만 살아갈 수는 없다. 20대, 30대의 젊은 세대와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내가 계속해서 일자리를 찾아나서면, 젊은 세대들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70대가 되어도 일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세대는 은퇴 후에도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문제는 그 70대가 지금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다. 지금의 70대는 자신의 가치관을 젊은 세대에게 강요하려 애쓰고 있다. 세대 간의 갈등은 더 심화되고, 공존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나는 다르길 바란다. 20대와 30대가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그들의 꿈을 지켜주고, 동시에 내가 70대가 되었을 때에도 그들을 위해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하지만 이런 나의 바람조차 과연 실현 가능할지 알 수 없다. 결국 우리는 각자도생의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군가는 “너 혼자 살아남아야 해”라고 속삭이고, 또 누군가는 “네 책임이 더 크다”고 비난한다. 이 속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책임은 무겁다. 그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무게는 나 혼자 짊어질 수 없을 만큼 크다. 하지만 세상은 나에게 계속 말한다. “합리화 따윈 집어치워. 그건 망상이야.”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내가 진정으로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혹시 나의 행동이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건 아닌지.
20대와 30대의 젊은 세대가 내게 기대는 무게와, 70대가 나에게 강요하는 가치관의 충돌 사이에서 나는 혼란스럽다.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분노를 느끼고, 그 분노가 나를 움직이게 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안다. 이 분노를 그저 불꽃처럼 태우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거라는 것을. 결국 우리에겐 끝까지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필요하다. 나는 그 이유를 젊은 세대의 미래에서 찾고자 한다.
함성룡 전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CFP)